'늙은' 브랜드의 끝없는 '젊은' 욕망

오토타임즈의 확대경
흔히 ‘장은 오래돼야 맛이고, 옷은 새 것이 좋다’고 한다. 자동차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속담이다. 기업 브랜드는 오래될수록 좋지만 제품은 새 것이어야 한다. 회사는 늙을수록 가치가 빛나고, 자동차는 트렌드가 반영돼야 장수할 수 있다.

‘늙었다’는 표현이 들어맞는 나이는 얼마나 될까. 통상 100살 내외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120살이 넘었고, 아르망 푸조가 2기통 2.3마력 엔진으로 16㎞를 달린 삼륜차를 만든 것도 123년 전이다. 헨리 릴랜드가 1기통 10마력 엔진을 ‘캐딜락’에 얹은 때가 1901년이고, 아우구스트 호르히 박사(사진)가 라틴어 ‘듣다’라는 의미의 ‘아우디(AUDI)’를 사용한 지도 102년이 흘렀다. 자동차의 왕으로 불렸던 헨리 포드의 역사도 100년을 넘은 지 오래다. ‘늙음’은 ‘전통’이라는 단어로 자랑된다. 그만큼 자동차 만들기 노하우가 많다는 신뢰의 상징이다. 그래서 창업 이후 흘러 온 시간을 당당히 차에 넣기도 한다. 제 아무리 후발주자가 제품력을 향상시켜도 선발업체가 쌓은 물리적인 시간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고민도 있다. 전통이 때로는 고루함으로 직결돼 발목을 잡는다. 신차 개발 때 언제나 ‘늙음(전통)과 젊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유다. 자동차 구매자가 젊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되 그렇다고 숙성된 브랜드의 가치를 포기할 수도 없다.

차라리 하나의 성격만 고집해 온 브랜드는 그나마 낫다. 태생부터 스포츠 세단에 매진했던 마세라티에 100년은 행복했던 시간이다. 1887년 마세라티 가문의 여섯 형제 가운데 넷째로 태어난 알피에리 마세라티의 자동차 만들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서다. 페라리와 포르쉐도 100년에는 못 미치지만 성격은 고수했다. 하지만 이들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마세라티는 극한의 스포츠카 MC 스트라달레도 있지만 SUV 쿠방과 중형 스포츠 럭셔리 세단까지 라인업이 확대된다. 포르쉐는 이미 SUV의 대명사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제품군 확대로 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다. 반면 차종이 즐비한 회사는 전보다 더 특화된 제품 만들기에 주력한다. 아우디가 R8으로 페라리와 포르쉐에 맞서는 게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무한경쟁’ 시대다. 늙음의 철학과 젊음의 미학이 맞아떨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뒤늦게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룬 회사에 100년을 내세운 브랜드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브랜드와 제품 전략 수립 방향을 설정하는 데 유용하다. 현대차가 최근 내놓은 ‘리브 브릴리언트(Live Brilliant)’는 전통보다 현재에 초점을 맞췄다. 어차피 넘을 수 없는 시간의 벽을 감성과 이미지로 극복하겠다는 생각이다. 현대차로선 무한 경쟁 시대에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몸부림이다.

품질이 변화되려면 일정한 수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칼 마르크스의 ‘양질전화(量質轉化)’ 이론이 떠오른다. 수많은 자동차회사에 모두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700만대를 앞세운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전환 발상은 양질전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늙음’의 경험과 전통을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 경험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