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오명'만 남긴 18대 국회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지난 24일 예정됐던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는 무산됐다. 여야가 이날 본회의를 열기로 했던 것은 국회법 개정안(몸싸움방지법)을 비롯해 꼭 필요한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마무리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여야는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였다. 국회법의 일부 문제조항을 놓고 하루종일 신경전을 벌이다 합의에 실패하자 본회의를 취소한 것이다. 역시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의 의견접근으로 본회의가 다시 소집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본회의가 소집된다 해도 법안처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결정족수(147명)를 채우기가 쉽지 않아서다. 18대 국회의원 중 60%가 이번 총선에서 낙선했다. 새누리당 원내행정국의 한 관계자는 “낙선·낙천자들의 마음이 이미 떠나 있어 국회 일정에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18대 국회는 본회의 개의 여부를 떠나 이미 각종 오명을 쌓아왔다. 최루탄과 해머가 등장하는 등 온갖 폭력이 난무했다. 외국잡지에까지 실리는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게 바로 18대 국회였다. 그런 가운데도 의원 수를 300명으로 늘렸다. 의원 수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여론에 정면 역행한 것이다.

다른 여러가지 신기록도 세웠다. 6차례에 걸쳐 97건의 법안이 직권상정으로 처리됐다. 한마디로 날치기 국회였다는 것이다. 전체 발의안 1만4909건 중 6453건이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전체 안건의 43% 수준이다. 사상 최고 수준의 폐기율이다. 17대 국회의 2배, 16대 국회의 9배에 달한다.

이날 본회의가 무산되자 정치권에서는 “해도 너무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당의 한 4선 의원은 “의원들의 마음이 전당대회와 대통령선거, 당내 계파갈등 등 다른 곳에 가 있어 본회의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서 “낙선한 한 초선의원은 ‘뭐하러 본회의에 오느냐’는 말까지 했다”고 꼬집었다. 인터넷에서는 일도 안하면서 세비는 꼬박꼬박 챙겨가는 의원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19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노동 무임금’을 지키는 것이다. 이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면 국회의원의 특혜를 막고 적어도 세금낭비는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