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멀리 가고 싶다면 '도덕적 가치' 에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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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미국에서는 생명보험 증권의 제3자 거래가 가능하다. 아프거나 나이 든 사람의 생명보험 증권을 사들여 피보험자가 살아 있는 동안 보험료를 대신 내고, 그들이 사망하면 약정된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는 형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생명을 걸고 벌이는 이런 ‘사망 채권’ 산업은 연 300억달러 규모에 이른다. 피보험자가 일찍 죽을수록 투자수익이 올라가는 게 특징이다.
마이클 샌델 지음 / 안기순 옮김 / 와이즈베리
336쪽 │ 1만6000원
뭐든지 가격이 매겨져 팔리고 또 살 수 있는 시대다. 생명보험 증권의 거래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무랄 데가 없다. 누구도 해를 입지 않고, 이득을 보는 거래이지 않은가. 피보험자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돈을 구할 수 있고, 투자자는 높은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왜 그럴까.《정의란 무엇인가》로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토론을 자처해 왔다. 새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통해서다. 샌델 교수의 논지는 책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하며, 시장이 만능은 아니다”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시장가치의 확대 경향에 주목한다. 삶의 영역 깊숙이 시장가치가 파고들어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지고 거래되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 ‘시장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 그렇다.
샌델 교수는 이런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거래가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하고 변질시키는 경우에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돈과 시장의 개입으로 거래의 가치가 변한 사례를 들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어린이집 실험을 보자. 이스라엘의 한 어린이집은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이 많아지자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갈수록 늦는 부모가 늘었다. 벌금제도가 도입되면서 부모가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올 때 느꼈던 ‘죄책감’이 요금을 내고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 변질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처럼 환경, 교육, 건강 등 여러 부문의 가치들에 가격이 매겨져 시장에 맡겨질 때는 내재된 도덕적 가치가 변질되기 십상이라고 설명한다.
샌델 교수는 “도덕적 논리 없는 시장 논리는 불완전한 것”이라며 “어떤 재화를 상품화할지 말지 결정할 때는 효율성과 분배정의 이상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