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트라우마…정치권 검역 중단 압박에 靑 '곤혹'

美 광우병 소고기 파문 확산

"5월2일 제2 촛불집회" 일부단체 예고…靑 "과학적 근거 없이 국민감정 자극 말라"
여론 눈치보며 검역중단엔 난색

미국 젖소의 광우병 발생과 관련, 청와대는 27일 “아직 국민건강에 위해가 될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미국산 소고기 검역 중단은 과잉 조치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검역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시민단체가 광우병 촛불시위 4주년인 5월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해 초긴장 상태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정권을 흔들었던 ‘촛불 집회’의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깊기 때문이다.○靑 “감정 아닌 과학으로 따져야”

청와대는 이날 주요 참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미국 광우병 발생에 따른 대응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그러나 뚜렷한 결론을 못 낸 채 일단 주무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로 대응 창구를 일원화한다는 방침만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청와대 경제·외교 라인은 검역 중단 요구에 부정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젖소에서 광우병이 발견된 이후 전면적인 검역 중단과 같은 조치를 취한 나라는 없다”며 “유일하게 조치를 취한 인도네시아도 그동안 연령제한 없이 모든 부위를 수입하다가 이번에 뼈 있는 소고기에 대해서만 일부 수입을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30개월령 미만의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한 소고기만 수입하는 한국이 검역 중단을 하는 것은 지나친 조치라는 설명이다.그렇지만 일부 시민단체 등이 ‘검역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선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감정을 배제하고 과학적 근거로만 따지면 미국산 소고기에 대해 검역 중단을 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가진 세력이 과학적 근거를 제쳐두고 국민 감정을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검역 중단”

정치권은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검역 중단을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위원장은 이날 경남도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는 국민의 위생과 안전보다 무역마찰을 피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며 “역학조사를 통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확실한 정보를 확보할 때까지 검역을 중단하고, 최종 분석 결과 조금이라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지면 수입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검역 중단에 부정적”이라는 기자의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그동안 국민이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일단 검역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대행도 “정부가 2008년 5월 미국에서 광우병 발병시 수입을 중단하고 전수조사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이제는 ‘즉시 수입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거짓말을 이어간다”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하고 재협상에 나서서 검역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제2 촛불집회’ 엄포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한 농축산단체와 시민단체들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중단하지 않으면 ‘제2의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농수축산연합회, 한국농민연대,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등 40여개 농수축산단체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에 자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안전성이 검증될 때까지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며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농민단체는 물론 5000만 국민과 함께 제2의 촛불집회를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광우병국민대책위원회 등은 내달 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차병석/최만수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