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고·BBQ…한식에 푹 빠진 싱가포르

K푸드, 아시아 입맛 잡았다 (上) '동남아 허브' 공략 성공

점포 성공땐 글로벌화 가능
드라마·K팝 인기 타고 개인 한식당도 급증

"비빔밥, 최고 웰빙식이죠"

싱가포르 최대 지하상가에 들어선 ‘래플즈시티’ 쇼핑몰. 지난 주말 저녁 이 쇼핑몰 지하 1층에 있는 한식당 ‘비비고’에선 2명의 중국계 여성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익숙한 손길로 메뉴판을 넘기던 이들은 망설임 없이 비빔밥과 파전을 주문했다. 비빔밥은 15싱가포르달러(1만3000원), 파전은 14싱가포르달러(1만2000원). 비빔밥을 맛있게 비비던 올리비아 탄(23)은 “다른 음식들에 비하면 비싼 편이지만 야채가 많이 들어간 웰빙식인 데다 이색적인 맛에 반해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이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싱가포르인과 외국인 관광객이며, 한국인은 5%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박진영 비비고 싱가포르법인장은 “싱가포르는 특성상 동네상권이 없고 쇼핑몰이나 대형빌딩 안에 입점할 수밖에 없다”며 “매장이 도심에 있어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고 있지만 매출이 이를 상쇄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연말 같은 성수기에는 하루 1000만원 정도 벌고 평균적으로 하루 600만원의 매출을 올려 비슷한 규모의 다른 푸드코트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맛의 현지화와 함께 드라마와 음악을 통한 한류열풍 덕분이란 설명이다.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K푸드가 싱가포르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국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인 BBQ의 차경일 싱가포르법인장은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경제와 무역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라 이곳에 점포망을 구축한다는 것은 동남아 시장 전체를 가늠할 수 있는 안테나를 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차 법인장은 “한국의 KOTRA와 비슷한 성격의 ‘IE(인터내셔널 엔터프라이즈)싱가포르’가 효율적으로 운영돼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IE싱가포르는 싱가포르에 법인을 둔 브랜드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설명이다. 싱가포르 영토 안에 있는 법인이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지원한다는 얘기다. BBQ는 싱가포르에 22개 매장을 두고 있다. 세계맥주전문점 ‘와바’, 커피전문점 ‘탐앤탐스’, 수제 햄버거전문점인 ‘크라제버거’, 갈비를 주 메뉴로 하는 ‘놀부 항아리갈비’ 등 국내 외식 브랜드가 싱가포르에 줄지어 진출한 배경에도 이 나라 정부의 ‘열린 행정’이 자리잡고 있다. 싱가포르에 나간 외식업체 중에는 해외 진출 확대에 적극적인 곳도 많다. 비비고는 올해 안으로 런던과 인도네시아 등지에 10여개의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BBQ는 56개국에 350여개 매장을 두고 있다. 탐앤탐스는 미국 LA와 호주에, 크라제버거는 홍콩에 발을 디뎠다.

규모는 작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06년 싱가포르 탄종파가호텔에 처음 들어선 한식당 ‘향토골’은 오는 6월 4호점을 연다. 1호점에서 벌어들인 작년 매출이 5억5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김세영 향토골 매니저는 “연예인들이 일궈놓은 한류 바람을 타고 개인 한식당들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싱가포르 전역에 문을 열고 있는 한식당이 100곳을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