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대암각화, 지형 바꿔도 세계유산 지정 가능"

울산대-하버드대 심포지엄서 새 등재방안 제시
“반구대암각화(사진)의 침수 방지를 위해 물길을 돌리거나 제방을 쌓아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최근 미국에서 개최한 ‘세계 선사 및 고대 예술:한국 울산의 반구대암각화’ 국제심포지엄에서 반구대암각화의 새로운 보존방안이 제시됐다.반구대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주변 지형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침수 원인인 사연댐 수위를 낮출 것을 주장한 문화재청과 다른 의견이어서 주목된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센터 평가전문가인 한준희 씨는 ‘반구대암각화와 세계문화유산의 조건’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울산시민들의 식수 확보를 위해 댐 수위를 낮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물길을 돌려 유적을 보존하는 것도 가능하며, 생태제방을 쌓을 경우 디자인에 따라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 여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센터 전문조사단에 현장조사를 의뢰해 구체적인 보존방안을 확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구대암각화가 세계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 유적이라는 것을 학술적으로 증명하고, 2010년 1월 ‘대곡천변의 암각화군’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예비목록에 등재한 만큼 천전리각석에 대해서도 학문적으로 가치를 입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영국의 대표적 암각화 연구자인 폴 밴은 “고래가 주요한 제재인 것이 특이하며 여러 계절, 다양한 활동, 여러 신화가 하나의 암벽, 그것도 수직 암벽에 표현된 매우 독특한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암각화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에스터 제이컵슨 텝퍼 오리건대 석좌교수는 “반구대암각화는 시베리아 타이가 지대부터 아무르 분지에 이르는 유적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 얼굴상이 그려져 있는 등 독특한 구성과 표현양식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프리카 암각화 연구자인 앤 솔로몬은 “반구대암각화는 문화가 다른 집단이 같은 시기에 잇달아 암각작업을 한 결과일 수도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이라고 해석했다.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반구대암각화는 한국 미술사의 출발점이자 한국 선사예술의 주요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바위 절벽을 신성한 제의(祭儀) 공간으로 인식한 수렵·채집 집단이 주술적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제작한 종교예술의 명품”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암각화 연구의 개척자인 임세권 안동대 교수는 반구대암각화의 제작시기를 청동기 시대로 규정하고 “샤먼의 주술지역이 사슴과 양을 치던 유목지역에서 어로와 수렵을 하던 한반도 동해안지역으로 바뀌었지만, 반구대암각화에서 그 신앙 형태는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는 지난해 10월 동국대박물관과 울산대박물관, 울산광역시가 작성한 1972년, 2000년, 2008년 보고서의 반구대암각화 사진을 정밀 분석해 “2000년 이후 훼손 속도가 2배나 빨라지고 있다”며 보존 대책의 시급성을 지적한 바 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