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표절'에 눈감은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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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 '글도둑'들 넘쳐나…남의 글 도용 정치권 특히 심해5월30일 제19대 국회가 시작된다. 그런데 그 국회에는 표절(剽竊)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이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지난 4·11 총선 막바지 그의 논문이 표절이었다는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그 박사학위를 준 국민대가 그 논문이 표절이었다고 확인 발표한 것은 이미 선거가 끝난 뒤였다.
의원 자질 평가법이라도 만들길
박성래
그는 그 ‘표절’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것을 근거로 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그 교수 자격으로 국회의원 후보가 되었다. 새누리당이 그를 공천한 것은 올림픽 금메달, 박사학위, 그리고 대학 교수 등의 자격 때문이었음은 물론이다. 선거가 끝나자 그는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논문 표절이 발표되자 교수직도 사퇴했다. 하지만 그가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났다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오는 30일에는 그가 제19대 국회의원으로서 임기를 시작할 모양이다.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새삼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표절은 도둑질이다. 남의 지식 재산을 도둑질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금붙이나 돈을 훔친 것도 아닌데, 남의 글 좀 빌렸다고 해서 크게 죄 될 것 없다고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또 한 세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남의 글을 얼마든지 베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너그러운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끼리 그까짓 학위 논문 일부를 베낀 것을 크게 탓할 것 있느냐고 너그러운 생각을 털어놓고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인터넷 보급으로 표절은 크게 늘어가고 있다. 미국의 어느 조사를 보면 2000년대 초에 이미 대학생의 반 정도가 표절을 했다고 응답한 일도 있다. 인터넷 이전(以前)이라면 논문 하나를 표절해 쓰려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을 찾고 필요한 부분을 골라 자기 손으로 베껴다가 그걸 짜깁기하거나 인용하며 자기 글로 완성하려면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컴퓨터 키만 몇 번 두들기면 자료를 검색하고, 필요 부분을 그대로 끌어다가 자기 논문에 덧붙일 수가 있다. 인터넷 시대의 표절은 작업 시간을 95% 절약시켜 준다고도 한다. 그전에 일일이 책을 찾아 표절하던 시절에는 40%의 시간 절약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러니 대학 주변에는 논문 대필업이 성행한다. 주제에 따라 값이 많이 다르겠으나, 박사 논문도 몇백만원으로 충분할 듯하다. 사실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논문이건 수필 정도건 누구에게 대필시켜 자기 것으로 발표하는 일이 많다. 이는 정치인의 경우 아주 심하다고 느껴진다. 얼마 전 보도된 일도 있지만, 그렇게 쓴 글을 모아 책으로 내어 출판기념회를 열면 수많은 독지가(?)들이 나타나 책도 사주고 정치자금도 두둑이 건넨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업무상 관련 있는 사람들이 그 기회에 정치인들에게 눈도장을 찍어두려는 짓거리이다.
표절은 한국사회의 암적 존재로 크게 늘어가고 있다. 학계만이 아니라 대중음악이나 영화 등에서도.
국회가 다양한 부류의 인사들로 구성돼야 할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다. 그렇다고 글 도둑에게도 300석 가운데 한 자리를 주어야 한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표절은 학문 세계를 황폐화하는 지름길이다.알고서도 이 명백한 학문 파괴를 눈감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표절 논문에 박사학위를 수여했던 국민대, 그 가짜 박사학위를 바탕으로 그를 교수로 임용했던 동아대 등은 업무방해로 그를 형사고발해야 할 것 같다. 대학들이 그런 조치를 취하건 말건, 대한민국 국회는 의원의 자질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규정하는 그런 국회법을 새로 만들어야 할 듯하다.
지난주 창간 20주년을 맞은 ‘교수신문’의 설문조사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을 준법성(遵法性)이라고 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법을 안 지킨다는 역설적 평가가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명예교수 parkstar@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