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떠나는 정부의 출정식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
“오늘은 출정식을 하는 자리입니다.” 지난달 28일 저녁 청와대 상춘재 앞뜰 잔디밭. 이명박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간의 조촐한 저녁자리가 마련됐다. 직전에 끝난 재정전략회의 뒤풀이를 겸해서였다. 테이블마다 막걸리도 한 순배 돌았다. 건배사를 제의받은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은 “반드시 다음 정부에 곳간을 가득 채워서 물려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출정식은 전쟁을 앞두고 승리의 의지를 다지는 자리다. 전쟁터는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판이 될 공산이 크다. 실제 이날 오전 10시부터 8시간 동안 열린 회의 내내 국무위원 누구도 경기 악화에 대비한 재정 확대 필요성을 제기하지 않았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은 필요 없다”며 “복지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만이 “열악한 지방재정 여건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에둘러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 “국무위원이 아닌 주무부처 ‘장관’ 자격으로 하는 발언”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날 회의를 지켜본 한 참석자는 “누군가 ‘균형재정이 절대선(善)은 아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를 할 법도 했는데, 단 한 번의 반대토론도 없어 놀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균형재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결연하지만, 균형재정의 ‘원안’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정책은 선거라는 정치과정을 거치면서 변질되기 마련이다. 표를 좇아가는 정치의 속성 때문이다. 유권자들도 긴축과 구조조정이라는 ‘쓴 약’보다는 성장으로 포장된 ‘경기부양’의 단 맛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적 손해를 감내하더라도 후세와 다음 정부를 위해 비축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재정부 내에서도 “정치권에서 ‘떠나는 정부가 새로 들어설 정부의 예산을 건드리려고 하느냐’고 따져들면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벌써부터 걱정하는 분위기다. 이달 말 19대 국회 출범과 함께 대선 레이스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재정부가 ‘출정식’에서 공언한 대로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재정부의 한 간부는 “확실한 것은 선거비용은 반드시 치른다는 것”이라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