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경복궁 전각 이름마다 '王의 길' 깊은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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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과 떠나는 지식여행
침전 '강녕전'
오복 중 세 번째가 강녕, 혼자 있을 때도 바르게 처신
편전 '사정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올바른 정사 펼칠 수 있어
정전 '근정전'
부지런히 할 바를 알아서 실천에 옮기는 게 왕도
조선이 건국되고 3년이 지난 1395년(태조 4년) 9월29일. 한양의 북악산 아래 넓은 터에는 390여칸 규모의 새 궁궐이 들어섰다. 200년 가까이 조선 왕조에서 법궁(法宮)의 지위를 유지한 경복궁(景福宮)이다. 새 궁궐의 영건을 축하하며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술이 거나해진 태조는 참모 정도전(鄭道傳)에게 궁궐과 각 전각의 이름을 짓도록 명했다. 과연 정도전은 무엇에 근거해서 궁궐의 이름을 지었을까. 《태조실록》1395년 10월7일의 기록에는 정도전이 중심이 돼 각 건물의 이름을 짓게 된 동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분부해 새 궁궐의 여러 전각 이름을 짓게 하니,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 아울러 이름 지은 의의를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연침(燕寢)을 강녕전(康寧殿)이라 하고, 동쪽에 있는 소침(小寢)을 연생전(延生殿)이라 하고, 서쪽에 있는 소침(小寢)을 경성전(慶成殿)이라 하고, 연침의 남쪽을 사정전(思政殿)이라 하고, 또 그 남쪽을 근정전(勤政殿)이라 하고, 동루(東樓)를 융문루(隆文樓)라 하고, 서루(西樓)를 융무루(隆武樓)라 하고, 전문(殿門)을 근정문(勤政門)이라 하며, 오문(午門)을 정문(正門)이라 했다.”이어서 정도전은 침전을 강녕전이라 한 것의 의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서경(書經)》‘홍범구주(洪範九疇)’에는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다섯 가지 복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세 번째가 바로 ‘강녕’이다. 수(壽:장수)·부(富:부귀)·강녕(康寧:평안)·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함)·고종명(考終命:천명을 다함)의 다섯 가지 덕은 그 중간인 ‘강녕’을 들어서 다 차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정도전은 한가하고 편안하게 혼자 거처할 때에도 마음을 바르게 해야 왕의 자리가 세워지며 오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가하고 아무도 없는 왕의 사적인 공간에서도 스스로 경계하며 마음을 바로 할 것을 바라는 마음이 배어있는 곳이 강녕전이었다. 실록의 기록을 보자.
“강녕전에 대해 말씀드리면, 《서경》 홍범구주의 오복 중에 셋째가 강녕입니다. 대체로 임금이 마음을 바루고 덕을 닦아서 황극(皇極)을 세우게 되면, 능히 오복을 향유할 수 있으니, 강녕이란 것은 오복 중의 하나이며 그 중간을 들어서 그 남은 것을 다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 옛날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스스로 경계한 시(詩)에, ‘네가 군자와 벗하는 것을 보니 너의 얼굴을 상냥하고 부드럽게 하고, 잘못이 있을까 삼가는구나. 너의 방에 있는 것을 보니,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는구나’ 했습니다. (…) 대체로 공부를 쌓는 것은 원래가 한가하고 아무도 없는 혼자 있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무공의 시를 본받아 안일한 것을 경계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두어서 황극의 복을 누리시면, 성자신손(聖子神孫)이 계승돼 천만대를 전할 것입니다. 그래서 연침(燕寢)을 강녕전이라 했습니다.”
경복궁의 편전을 사정전이라 한 것에 대해서는 정사를 함에 늘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그 사정전에 대해서 말하면,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대개 임금은 한 몸으로서 높은 자리에 계시오나, 만인의 백성은 슬기롭고 어리석고 어질고 불초함이 섞여 있고, 만사의 번다함은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됨이 섞여 있어서, 백성의 임금이 된 이가 만일에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어찌 일의 마땅함과 부당함을 구처(區處)하겠으며, 사람의 착하고 착하지 못함을 알아서 등용할 수 있겠습니까. (…) 이 전(殿)에서는 매일 아침 여기에서 정사를 보시고 만기(萬機)를 거듭 모아서 전하에게 모두 품달하면, 조칙을 내려 지휘하시매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신은 사정전이라 이름하옵기를 청합니다.”
정도전은 정전인 근정전의 이름에 대해서는 부지런함이 위정자에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도전이 모든 일에 부지런해야 함을 말한 것이 아니라, ‘부지런할 바’를 알아서 부지런히 정치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근정전과 근정문에 대해 말하오면,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게 됨은 필연한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하온데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 일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서경》에 말하기를, ‘경계하면 걱정이 없고 법도를 잃지 않는다’했고, 또 ‘편안히 노는 자로 하여금 나라를 가지지 못하게 하라.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하루이틀 사이에 일만 가지 기틀이 생긴다. 여러 관원들이 직책을 저버리지 말게 하라. 하늘의 일을 사람들이 대신하는 것이다’했으니, 순임금과 우임금의 부지런한 바이며 (…) 그러나, 임금의 부지런한 것만 알고 그 부지런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그 부지런한 것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세밀한 데에만 흘러서 볼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유(先儒)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한다’했으니, 신은 이것으로써 이름하기를 청하옵니다.”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궁궐 전각 하나하나의 이름은 그냥 쉽게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성리학을 이념으로 했던 조선시대에는 《시경》과 《서경》 등의 유교 경전을 기본으로 해, 조선의 꿈과 이상을 고스란히 건물의 이름에 심어 두었던 것이다.
최근 궁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경복궁에는 주말마다 시민, 학생, 외국인 등의 인파가 넘쳐난다. 경복궁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궁궐의 전각에 담긴 이름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근정전이 상징하는 부지런함이 ‘부지런히 할 바를 알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한 점은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신병주 < 건국대 교수 >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www.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