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프리미어 리그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영화나 드라마도 그렇게는 못 만들 것이다. 14일 새벽(한국시간) 막을 내린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11~2012 시즌 얘기다. 최종 38라운드 직전까지 ‘시끄러운 이웃(noisy neighbor)’인 맨체스터시티(맨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승점이 같고 골득실 차로 1,2위였다. 맨유는 선덜랜드와의 최종전을 1 대 0으로 이기고 맨시티의 경기 결과를 기다렸다.

종료 3분 전까지 맨시티는 하위팀인 퀸즈파크레인저스에 1 대 2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그때 믿기 힘든 기적이 일어났다. 맨시티가 2분 사이 두 골을 몰아쳐 3 대 2로 뒤집은 것이다. 1968년 풋볼리그(EPL의 전신) 우승 이래 44년 만이다. 그 덕에 무수한 국내 EPL 팬들도 밤잠을 설쳤다.‘지구상 최고의 쇼’라는 EPL은 세계 200여개국 6억명이 시청한다. 이번 시즌 1315만명의 관중(경기당 3만4600명)이 찾았다. 20개 팀이 홈·원정으로 총 380경기를 치른다. 매년 하위 3개 팀이 2부(챔피언십) 리그로 강등되고, 2부에서 3개 팀이 올라오는 진입·퇴출 시스템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풋볼리그 시절 훌리건 난동으로 침체일로였으나 1992년 EPL로 변신해 단기간 급성장했다. 그 이면에는 연간 18억파운드(3조2000여억원)에 달하는 TV 중계권료 배분방식이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에선 각 클럽이 중계권을 개별 협상하는 반면, EPL은 사무국이 공동판매한다. 중계권 수입은 50%(균등 배분)-25%(순위로 차등)-25%(중계 횟수로 차등)로 나눈다. 1위팀과 꼴찌팀의 수입 차이가 두 배 정도다. 반면 스페인에선 그 격차가 15배에 이른다. 수입 차이가 적을수록 경기력 차이도 줄어든다.

EPL의 매력은 빠른 속도감이다. 쉴 새 없이 뛰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축구 전용구장에서만 열리고 중계기술도 뛰어나, TV로 시청해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나 이탈리아 ‘세리에A’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기고 있다고 공을 빙빙 돌리거나 이른바 ‘침대 축구’는 엄두도 못 낸다. 당장 야유가 쏟아지고 관중이 외면하기 때문이다.물론 EPL 20년간 우승팀은 5개팀(맨유 12회, 첼시·아스널 각 3회, 블랙번·맨시티 각 1회)에 불과하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수많은 라이벌 대결(더비 매치)과, 우승 다툼 못지않게 격렬한 강등권 탈출 경쟁으로 흥미를 더한다.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일도 수두룩하다. 골 차이가 많이 났다고 봐주는 것도 없다.

경쟁의 극대화가 EPL을 세계 최고 리그로 만들어냈다. 최고가 되는 길은 하나다.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