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인센티브의 역설

박해영 국제부 차장 bono@hankyung.com
미로에 쥐가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바닥에 전류가 흐른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와 존 도슨은 미로 구조를 바꿔가며 전기 강도를 조금씩 높여봤다. 전류가 강할수록 출구로 빠져나오는 시간은 단축됐다. 전기 충격 없이 안전한 통로를 통과하는 것이 인센티브(보상)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일정 강도를 넘어서자 기록은 급격히 나빠졌다. 성과 그래프는 알파벳 U자를 뒤집어놓은 모양으로 나왔다. 지나친 자극이 스트레스를 유발해 역효과를 낸 것이다. 1908년의 이 실험은 보상과 성과의 관계를 연구한 고전으로 유명하다.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는 사람들에게 이 실험을 적용해봤다. 인도의 시골마을에서 퀴즈 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는 6개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상금은 운에 달렸다. 1번을 뽑고 퀴즈를 시작하면 문항당 4루피씩 총 24루피, 2번은 10배인 총 240루피, 마지막 3번은 100배인 총 2400루피가 걸려 있다. 이 마을의 한 달 평균 수입은 500루피다. 3번을 뽑고 문제를 다 풀면 거의 5개월치 수입이 손에 쥐어진다.

역U자 성과 곡선 그려

결과는 100여년 전 쥐 실험과 비슷했다. 퀴즈를 푼 사람들의 비율은 1번 그룹이 가장 높았고 다음이 2번과 3번 순이었다. 1, 2번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3번 그룹의 정답 비율은 1번의 절반에 불과했다. 책 ‘불합리성의 밝은 면(the upside of irrationality)’에서 결과를 소개한 애리얼리 교수는 반년치 급여에 육박하는 목돈 앞에서 참가자들이 지나치게 긴장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영국 등 유명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주주총회에서 수난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위의 실험들이 떠올랐다. 주주들이 CEO의 성과 그래프가 역U자의 꼭짓점을 지났다고 판단했을까. 영국 보험회사 아비바의 앤드루 모스 CEO는 연봉인상 안건을 내놨다가 주주 과반수의 반대에 막혔다. 돈을 더 줘봤자 실적이 나아질 거라는 보장이 없어서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은 17% 줄었다. 모스의 작년 급여는 269만파운드(29억원)였다. 공개 망신을 당한 그는 1주일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성과에 맞는 보상 이뤄져야

금융회사 바클레이즈, 원자재 중개사 엑스트라타, 광고대행사 WPP그룹 등의 주총장에서도 경영진의 급여 인상안을 놓고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다. 비크람 판디트 씨티그룹 CEO 역시 보수 인상 안건을 올렸다가 과반수 주주의 반대표에 뜻을 접었다. 스톡옵션을 합한 판디트의 지난해 연봉은 1490만달러(169억원)다. 급여 인상이 ‘당근’ 역할을 하기엔 이미 보상이 충분해 보인다. 글로벌 기업의 CEO들이 인도의 순박한 청년들처럼 보너스 앞에서 식은 땀까지야 흘리진 않겠지만, 과도한 보수가 오히려 부진한 성과의 원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들은 보너스에 집착하는 CEO는 필요 이상의 리스크를 떠안는 경향이 있고, 장기 성과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이 기회에 한몫 챙기자는 모럴 해저드까지 끼어들면 인센티브의 부작용은 더 커진다.

미국 중앙은행(Fed) 조사에 따르면 1930년대 미국 100대 기업 CEO의 평균 연봉은 노동자 평균의 40배였지만, 2000년대 초반엔 367배로 급증했다고 한다.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기업 이사회를 점령하자는 ‘아큐파이 보드룸(occupy boardroom)’ 구호가 나온 것은 일부 배부른 CEO들이 자초한 듯하다.

박해영 국제부 차장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