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는 지금]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기회"…부동산 경매시장에 '큰 손' 발길

초고가 주택, 반값에 낙찰
수익형 부동산은 경쟁 치열
최고가 아파트인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가 지난 15일 사상 처음 경매를 통해 새주인을 만났다. 경매 처분된 이 아파트 사우스윙동 2704호(167㎡·63평형)의 감정가격은 36억원. 두 차례 유찰된 끝에 이날 26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격은 감정가격의 73.6% 수준이었다. 덕분에 4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 집을 장만한 K씨는 감정가격보다 10억원 정도 싸게 원하는 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강남 부자들이 부동산 경매시장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망한 집이어서 재수없다”는 선입견 때문에 꺼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합리적인 강남 부자들은 경매 시장을 내집과 수익형 부동산 마련을 위한 방편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가 주택 절반값에도 잡을 수 있어

20일 경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요즘은 고가 아파트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유례없는 호기다. 1~2인 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 경제성장률 둔화, 중산층 붕괴 등의 현상으로 건국 이래 처음으로 중대형 평형이 시장에서 완전히 찬밥 신세다. 이에 따라 감정가격 20억원 이상의 고가 주택은 기본적으로 두 차례는 유찰된다. 주상복합은 3번 유찰이 기본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가 아파트의 낙찰가율이 급락하고 있다. 아파트는 감정가격의 70%대에서 너끈히 잡을 수 있다. 감정가격보다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 이상 싸게 사는 게 가능하다. 주상복합은 감정가격의 50%대에 매입할 수도 있다. 실제 서초동 트라팰리스 아크로비스타 등 일부 주상복합이 최근 감정가격의 절반 수준에서 낙찰됐다.

경매 컨설팅업체인 EH경매연구소의 강은현 대표는 “경매 물건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강남 부자들의 입찰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며 “경기 침체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강남 부자 입장에선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기회”라고 말했다.

경매 시장이 특별히 유리한 것은 원하는 매물을 골라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호경기에는 인기 아파트를 경매시장에서 구경하기 어렵지만 요즘은 인기 아파트 경매 물건이 넘쳐나고 있다. 반포동 반포자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대치동 타워팰리스, 도곡렉슬 등 초고가 아파트들이 줄줄이 경매시장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수익형 인기 폭발

경매시장에서 근린상가 빌딩 다가구주택 등 수익형 부동산을 찾는 강남 부자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감정가 20억원인 건국대 인근 다가구주택 입찰엔 무려 15명이 몰렸다. 한 차례밖에 유찰되지 않았지만 임대수익률이 짭짤해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러다 보니 수익형 부동산의 경우 고가 주택처럼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값에 낙찰받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 한 차례 정도 유찰된 다음 시세보다 조금 싼 수준에서 낙찰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심지어 신건에서 낙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강남 부자들이 경매시장을 찾는 것은 시장에서 찾을 수 없는 매물을 경매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 컨설팅 부실채권투자 등 원스톱 경매서비스를 제공하는 KJ국제법률사무소의 정충진 변호사는 “수익형 부동산의 인기가 높다 보니 일반 매매시장에서 괜찮은 매물을 찾기가 어렵다”며 “경기 침체 장기화 영향으로 보유 가치가 높은 수익형 부동산이 심심찮게 경매시장에 등장하고 있어 강남 부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경매 전문가들은 요즘은 경매 물건을 터부시하는 강남 부자들이 많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서복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경매담당 교수는 “경매는 복잡하게 얽힌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해 부동산이 다시 정상적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라며 “경매 시장이 없으면 자본주의 시장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매하는 사람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