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에베레스트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 1977년 9월15일 고상돈 대원이 에베레스트의 정상 8848m에 태극기를 꽂으며 무전기로 알려왔다. 온 나라가 감동으로 들썩였다. 이로써 한국은 여덟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국, 고상돈은 55번째로 정상을 밟은 산악인이 됐다. 이렇듯 에베레스트는 특별했다.

에베레스트는 본래 티베트에서 초모룽마(Chomo Lungma, 대지의 어머니), 네팔에선 사가르마타(Sagarmatha, 하늘의 이마)로 불리며 신성시됐다. 미국 산악인 리지웨이는 “에베레스트는 상징이요 비유이며 궁극의 목표”라고 했다. 세계 최고봉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식민지 인도의 측량국장이던 영국인 앤드루 워가 1846~1855년 히말라야 산맥의 79개 고봉을 정밀 측량한 결과 ‘피크 15’가 가장 높음을 확인했다. 측량을 주도했던 전임자 조지 에베레스트의 공적을 기려 이 산을 에베레스트라고 명명했다. 에베레스트 도전은 1921년부터 시작됐다. 1924년 영국의 조지 말로리는 정상을 200m 남긴 곳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으나 실종됐다. 75년이 흐른 1999년 BBC 다큐멘터리팀이 8160m 지점에서 추락사한 말로리를 발견했다. 결국 1953년 5월29일 뉴질랜드 출신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전문안내인)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 힐러리는 훗날 “텐징이 먼저 오를 수도 있었는데 정상 부근에서 뒤처진 자신을 30분이나 기다려줬다”고 회고했다.

최초 등정 이후 무려 3000명 이상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한국인 등정자도 90여명에 이른다. 1978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는 최초로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8000m 이상 고도에선 산소가 평지의 30%도 안 된다. 메스너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의 최초 완등자이기도 하다.

에베레스트에 가장 많이 오른 인물은 세르파 압파다. 압파는 1990년부터 총 21회 올랐고 2010년엔 사망한 힐러리의 유해를 갖고 등정했다. 프랑스의 장 마르크 브와벵은 1988년 등정 후 베이스캠프까지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했고, 슬로베니아의 다보 카르니카는 2000년 정상에서 3510m를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2001년 미국 시각장애인 바이헨 마이어가 정상에 올라 타임지 표지인물이 되기도 했다.일본의 73세 할머니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해 화제다. 1938년생인 와타나베 다마에 씨는 2002년 자신이 세운 여성 최고령 등정기록(만 63세)을 10년 만에 갈아치웠다. 산에 왜 올라가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어서”라던 말로리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도전 자체가 놀랍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