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와 性관계' 무조건 처벌? 13세 이상 합의된 관계면 '무죄'

뉴스인사이드 - 경찰팀 리포트 < '불법과 합법' 그 모호한 경계 >

위조지폐, 조잡하게 만들거나 통용되지 않으면 '무죄'
대포폰과 차명폰, 타인 명의 도용 대포폰 '유죄'…동의받고 쓴 차명폰 처벌 못해
내기 골프, 수백·수천만원씩 걸고 상습적으로 할 경우 '도박죄'
#1. 서유열 KT 사장은 대리점 사장에게 부탁, 그의 아들 명의로 ◇◇◇을 만들어 ‘민간인 불법 사찰’의 핵심 인물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빌려줬다.

#2. 경찰관이 □□□으로 룸살롱 업주에게 단속 정보를 흘려주고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3. 노숙자·신용불량자 등의 이름을 빌려 수천대의 □□□을 만들어 불법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은 ‘대포폰’, ◇◇◇은 ‘차명폰’이다. 둘 다 남의 명의로 가입한 휴대폰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법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타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대포폰은 주민등록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차명폰은 남의 명의로 가입한 부분은 같지만 ‘동의를 받고’ 쓴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A가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개설해 B에게 빌려주고 B가 이를 사용하는 데는 법적 제약이 없다. 설령 이 휴대폰이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됐다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이처럼 현행법에는 ‘합법’과 ‘불법’이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 법률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 본의 아니게 위법 행위를 하게 되는 일도 부지기수로 일어나지만 법 조항에 근거해 범죄 행위를 처벌하는 법조인조차 법리 해석 및 적용 문제를 두고 다투는 때가 많다. 1,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유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융합형법센터 연구위원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례법’ 같은 조항이 늘어 검사·변호사조차 착오에 빠질 때가 있다”며 “정서상 이해가 안 되는 조항도 많아, 무조건 위법이라고 하기보다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위폐 소지했다면…

최근 법원의 판례를 보면 한눈에 위폐라는 걸 알아볼 정도로 조잡하거나 통용되지 않는 위조지폐를 소지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2009년 유모씨(43)는 자신이 운영하던 소방기기업체가 부도나면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유씨는 궁리 끝에 가짜 돈을 만들어 빚쟁이들에게 보여주고 돈 갚을 날을 미뤄보기로 했다. 유씨는 여관방에서 5만원권 지폐를 A4 용지에 복사한 뒤 자를 대고 돈 부분만 오려 위조지폐를 만들었다. 유씨는 위조지폐 조각을 발견한 여관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검찰은 유씨를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2년 이상 징역인 통화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8일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위조지폐가 정교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유씨는 진짜 돈의 앞면만을 복사, 누구든지 종이를 뒤집어보기만 해도 위조지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재판부는 “위조통화가 되려면 유통 과정에서 일반인이 진짜 돈으로 오인할 정도의 외관을 갖춰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통화위조죄는 위조지폐를 ‘행사할 목적’이 있을 때 적용된다. 돈이 있는 것처럼 보여주려고 한 것은 행사할 목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용되지 않는 위폐를 소지한 사람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9년 이모씨(65)는 지인으로부터 “처분할 방법을 알아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100만유로짜리 위조지폐를 받았다. 검찰은 이씨가 100만유로짜리 위조지폐를 소지한 걸 확인하고 위조외국통화 취득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화폐 유통에 대한 거래상의 신용과 안전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다”며 모든 혐의에 유죄를 인정, 이씨에게 징역 1년4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00만유로 지폐는 사실상 유통되는 통화를 위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실제로 통용되지 않는 지폐라면 위·변조하거나 취득했다 해도 처벌할 수 없다”며 위조외국통화 취득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유로 화폐의 최고 단위는 500유로로, 100만유로 지폐는 없다. 형법은 위조화폐를 행사할 목적으로 외국에서 실제 사용되는 화폐·지폐·은행권을 위·변조하거나 취득한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성년자 성관계 무조건 처벌?

최근 그룹 룰라 멤버였던 방송인 고영욱 씨(36)가 만 18세인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처벌 범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쟁점 가운데 하나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고씨 진술이 받아들여질지 여부다. ‘아동 및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미성년자 성폭행범은 피해자의 처벌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행법은 피해자가 12세 이하인 경우와 13~18세 청소년인 경우로 또 한 번 나눠 형사처벌 유무를 결정하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가 만 13세 미만인 경우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로 보고 처벌한다. 그러나 13세 이상이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고씨의 ‘성폭행’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이 폭행에 따른 외상, 협박에 의한 정신적 피해 등 강제성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려고 계속 뛰어다녔던 것도 ‘합의된 성관계’ 주장을 뒤집기 위해서다. 그러나 경찰은 성관계의 강제성 여부에 대한 사실 확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혐의를 당초 ‘성폭행’에서 ‘간음’으로 달리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간음죄는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한 강간과 달리 미성년자나 심신미약자에 대해 속임수(위계)나 힘(위력)으로 간음 또는 추행한 경우 적용된다. 이번 사건에선 고씨가 A씨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 술에 취하게 유도했거나 인기 연예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성관계를 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내기 골프는 유죄?

내기 골프의 유죄 여부는 상습적이고 고액이 오가는 경우로 제한된다. 법원은 홀당 우승자가 1만~2만원을 가져가는 주말 골퍼들의 ‘스킨스’ 게임은 도박이 아니지만 프로골퍼가 수천만원을 걸고 내기 골프를 치면 도박죄가 성립된다고 판결을 내리고 있다.

2010년 4월 대법원은 상습적으로 내기 골프를 한 혐의로 기소된 선모씨(55) 등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었다. 선씨 등은 2002년 12월부터 2004년 5월까지 함께 골프장을 다니면서 26차례에 걸쳐 6억여원, 나머지 3명은 32차례에 걸쳐 8억여원의 판돈을 걸고 내기 골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도박은 화투나 카지노처럼 승패의 결정적 부분이 ‘우연’에 좌우돼야 하는데 운동 경기는 선수의 기능과 기량이 지배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끼치므로 골프는 도박이 아니다”라고 무죄를 선고했다. 또 “내기 골프가 도박이라면 홀마다 상금을 걸고 승자가 이를 차지하는 골프의 ‘스킨스’ 게임도 도박이고, 프로골프 선수가 재물을 걸고 골프 경기를 해도 도박죄에 해당하는 불합리함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골프는 경기자의 기량이 일정한 경지에 올랐더라도 매홀 내지 매경기의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기 어려워 도박죄가 성립하는 우연의 성질이 있다”며 원심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스킨스’ 게임은 무죄로 보지만 거액 내기 골프에 대해선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스크린 골프장에서 내기 골프는 어떨까. 최근 스크린 골프장에서도 타당 1000~2000원짜리 내기 골프가 성행하지만 법적 처벌을 받은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단속 주체인 경찰은 “도박죄를 적용하려면 상습적으로 거액의 판돈을 걸고 장시간에 걸쳐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덕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종 복권사업과 경마·경륜·경정 등 사행성 게임이 공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박죄의 처벌 범위가 좀 더 분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복잡다기화하면서 편법은 진화하고 교묘한 탈법도 늘어난다. 합법과 불법 사이의 사건이 빈번해지면서 일선 경찰과 검찰도 법 적용을 놓고 단속에 어려움이 커져가고 있다.

하헌형/이지훈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