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혼낸 후배는 꼭 '옥상 호출'…커피 건네주고 "쌓인거 풀어"

직장인들의 화해법
술잔 기울이며 "내가 미안"…다음날엔 다시 '악마' 김과장

"다퉜으니 반성문 내라고?" 찬찬히 쓰면 앙금 싹 풀려
타다다닥 = 화해하는 소리…입으로 화내고 메신저 사과
전자업체에 근무하는 최 부장은 사내에서 ‘직원들 반성문 시키기’로 유명하다. 최 부장은 부하 직원들끼리 다툼이 있을 땐 항상 당사자들을 불러세우고 숙제를 내준다. ‘당신들이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됐는지’ ‘다툼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적은 A4 1장의 반성문이 숙제다. 매사에 엄격하고 모든 일을 규정대로 처리하는 그에게 직장 내 다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처음엔 싫었지만 이제는 적응돼 반성문이 어떤 화해보다도 좋다는 게 부하 직원들의 평가다. 최 부장의 반성문 시키기로 사내 갈등이 없어졌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반성문을 천천히 쓰다보면 뭘 잘못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옛날 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이랄까요.” 물론 반성문 쓰기가 싫어서 최 부장한테는 절대로 싸운 티를 안 낸다는 후문도 들리지만 말이다.남녀노소별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직장에선 크고 작은 일로 서로 부딪치게 마련이다. 직장 내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혼낸 후에 “옥상으로 올라와”

철강회사를 다니는 천 과장은 호탕한 성격으로 평소에 주변 사람들과 격의없이 지낸다. 다만 다혈질 성격 탓에 고성을 지르며 후배 직원들을 혼내는 때도 종종 있다. 체구도 씨름선수 못지않은 천 과장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후배들은 주눅들게 마련이다. 그가 후배들을 야단친 후에 항상 하는 일은 ‘옥상 호출’. 뒤끝없이 깨끗하게 앙금을 풀자는 천 과장만의 독특한 화해법이다. 처음 옥상으로 호출받아 올라갈 때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는 게 후배들의 전언이다. 이젠 그가 “이 대리, 점심 먹고 옥상에서 보자고”라고 하면 대부분 후배들은 눈치를 챈다. 천 과장은 옥상에서 후배들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위로하고, 격려한다는 게 경험자들의 얘기다. “하루종일 생활하는 곳인데 얼굴 붉히면 서로에게 손해죠. 먼저 위로하는 천 과장이 고마울 뿐입니다.”

유통업체 홍보팀에 근무하는 커리어우먼 강 주임. 그녀는 평소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로, 대화를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른다. 그 말 많은 강 주임도 동료와 말다툼을 하게 되면 벙어리가 된다. 말 한마디 안 한 채 일만 하는 모습에 ‘두 얼굴의 여자’라는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다. 자존심 강한 강 주임답게 입으로는 절대로 화해하지 않는다.

그녀만의 화해 수단은 바로 메신저다. 말없이 조용히 메신저로 화해신청을 하는 강 주임의 모습에 직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강 주임 키보드에서 소리가 요란하게 날 때면 누구와 열심히 화해를 하는 겁니다.”◆화해엔 ‘음주’가 최고

직장인들에게 회식 자리는 서로 쌓아놨던 앙금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건설업체에 근무하는 홍 대리는 평소 술자리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애주가다. 그에겐 오직 술만이 인간관계의 전부다. 당연히 회사 동료와 다퉜으면 술로 해결하곤 한다.

홍 대리는 어느날 옆팀 장 대리와 업무상 크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퇴근하고 두고보자”는 홍 대리의 말에 굳게 몸과 마음의 준비까지 했던 장 대리. 그러나 홍 대리가 퇴근해 술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람이 180도 바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야. 장 대리. 아까는 내가 잘못 생각한 거 맞지? 그렇지? 오늘 그냥 편하게 술이나 먹자고.” 단순한 홍 대리답게 화해전략도 단순했다. “허허 웃으면서 소주잔을 권하는 홍 대리의 단순무식한 모습에 그냥 웃음이 나왔습니다.”물론 술이 항상 좋은 화해법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몇 달 전 전자업체에 입사한 신입사원 도씨는 사수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거는 전화가 이젠 지겨울 정도다. 도씨의 사수는 낮에는 야단을 치다가 매번 밤에 술을 먹고 사과 전화를 해왔다. 문제는 그게 끝이라는 점이다. 다음날 아침만 되면 또 다시 ‘악마’처럼 괴롭히는 사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처음엔 혼을 내고 미안해서 전화까지 하다니’ 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째 반복되다 보니 사람이 사이코 같아 보여요.”

◆‘무대응’도 또 다른 화해법?

유통업체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두 명의 홍일점인 김 주임과 이 대리. 성과 평가를 앞두고 인센티브에 ‘눈이 먼’ 이 대리는 후배 김 주임이 하던 프로젝트를 은근슬쩍 자신의 것으로 가로챘다. 해당 프로젝트가 고과에 유리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둘 사이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렸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직장 동료 사이에 언제까지 도끼눈을 뜰 수는 없는 법. 대신 김 주임은 ‘표면적인 화해’만 하기로 했다. ‘점심이나 회식 때 같은 테이블에 앉지 않기’ ‘부탁할 게 있으면 옆사람을 이용하기’ 등이다. 처음엔 불편하기도 했지만 김 주임도 점차 적응하고 있다.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적당히 표면적으로 지내는 것도 ‘화해의 다른 길’ 아닐까요.”전자업체에 다니는 문 대리는 몇 달 전 옆팀의 송 대리와 업무 문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운 뒤 아예 말 한 마디조차 나누지 않는다. 동료들은 함께 술자리를 갖고 화해하라고 조언했지만 문 대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업무 목적으로 만난 회사에서 굳이 자존심을 버려서까지 화해할 필요는 없다는 게 문 대리의 신조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잖아요. 뜻이 맞지도 않고 껄끄러운 동료와 굳이 화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강경민/고경봉/김일규/강영연/정소람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