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당 태종, 링컨 그리고 대선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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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혁신·통합 외치지만개 두 마리가 고깃덩어리를 같이 물고 다투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우가 묘안이 있다며 나뭇가지로 양팔저울을 만들어 고기를 둘로 나누었다. 여우는 균형을 맞춘다면서 무거운 쪽을 베어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쪽이 좀 더 무거워지자 여우는 그쪽을 베어물고는 다시 무게를 달았다. 개 두 마리는 여우가 양쪽을 번갈아가며 모두 베어물어 먹을 동안 지켜보다가 고깃덩어리를 몽땅 잃었다. 이솝우화의 한 토막이다.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사람'을 얻기 위한 시도는 없어
당태종·링컨 리더십 본받아야
김태황 < 명지대 교수·경제학 >
우리나라를 비롯해 올해 대선을 치렀거나 정권 교체가 예정된 20여개 국가에서 ‘혁신’과 ‘통합’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 대통령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네 번째 집권에 도전하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나 8년간 대통령직과 4년간 총리직 후에 다시 대통령직에 선출된 러시아 푸틴에 이르기까지 각자 국력 강화를 위한 나름대로의 혁신책과 통합책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여야 정치 슬로건의 핵심 문구는 ‘새로움’과 ‘통합’이었지만 과정과 결과에서 나타난 결실은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혁신을 단호하게 강조한, 20세기 전반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는 슘페터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신이 지속되지 못한다면 경제적 발전의 원동력은 사라진다고 진단했다. 한 사회의 경제적 발전에 중요한 것은 외부 환경의 변화보다 내부에서 부단히 새롭게 변화하는 경제활동이라고 했다. 슘페터에 의하면, 혁신은 ‘창조적 파괴’ 과정이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고, 새로운 상품을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기존 생산수단이나 생산방식을 변화시켜야 하며,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를 파괴할 정도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요즘 전 세계 학문과 산업계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융복합화도 창조적 파괴의 한 방향이다. 슘페터는 기업가가 혁신의 주도력을 발휘해야 하며 통찰력, 정신적인 자유,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가뿐만 아니라 각계 전문 분야에서 이런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사회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당나라의 2대 태종은 현종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두드러진 치적을 남기고 태평성국을 이룬 임금에 해당한다. 형과 동생을 죽이고 태종이 된 이세민이 지혜롭게 취한 정책들 중 하나는 실력에 의한 인재 등용책이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인재 육성과 사회 통합의 정책이었다. 이를테면, 형과 이간질을 시키면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위징(魏徵)이라는 대신을 역적으로 처단하기는커녕 그의 재능과 일관된 충성심을 간파하고 오히려 재상으로 임명함으로써 정치적 숙청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사회적 분열을 불식시켰을 정도다. 대신들이 허심탄회한 충언으로 잔소리를 늘어놓아 임금의 신경이 곤두선 일이 비일비재해 짜증스러웠지만 태종은 충신을 얻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담아내기 위해 스스로 번거로움을 자청했다. 군주의 1인 지배보다 백성들의 평안을 지향하는 사회적 통합을 몸소 지향했다. 링컨 대통령이 자신을 고릴라라고 조롱하며 독설을 퍼부었던 정적 스탠턴 변호사를 국방장관으로 기용해 자기편으로 만들었던 일화도 유명하다. 스탠턴의 사명감과 추진력을 활용해 남북전쟁의 난국을 헤쳐 나갔다.
‘혁신’과 ‘통합’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서 전혀 생소하지 않다. 우리 기업들이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온 전략적 가치다.
하지만 기업에서 이뤄지는 뼈를 깎는 혁신과 통합은 정치권으로 들어오면 알맹이 없는 껍질만 그럴 듯할 뿐, 국민들은 이제 내용을 들여다볼 마음마저 닫게 됐다. ‘표’를 얻기 위한 ‘새로움’과 ‘통합’ 슬로건은 있었지만 ‘사람’을 얻기 위한 새로움과 통합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선을 6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서 대선 주자들이 국가 경영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혁신과 통합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태황 < 명지대 교수·경제학 ecothk@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