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비정규직 보호'의 불편한 진실

정규직·비정규직 이분법적 구분…영세기업 열악한 실태도 살펴야

이인실 < 서강대 경제학 교수 insill723@sogang.ac.kr >
인정하기 싫지만 어느덧 모임에 가면 윗자리로 앉는 일이 많아졌다. 사실 편하지는 않다. 선배들이 많은 자리가 좋다. 지난번 학술 모임에서 선배교수의 쓴소리를 들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선배의 일성은 이렇다. “요즘 경제학계의 연구들이 선배들이 할 때와 비교해 큰 진전이 없다. 선배들이 연구할 때는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어 거대담론만 이야기했는데 국민 가까이에서 정책제안을 해주어야 할 경제연구들이 아직도 총론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따끔한 질책이었다. 속으로 뜨끔했다. 현실에 관한 연구 중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대표적인 예로 비정규직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가장 해법 찾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정책대상이다. 새누리당이 개원과 동시에 1호 법안으로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을 제출했고 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소속의원 전원이 서명한 민생법안에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시켰다. 사실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가 외환위기 후유증인 심각한 고용불안을 정치사회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만든 지극히 정치적인 용어다. 노동시장 양극화의 대표적 희생자로 비정규직이 지목된 결과인 것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고용이 불안하고 임금수준이 낮으며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논쟁 끝에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3개 법안이 2007년 7월부터 시행됐다. 최근 수년간 가장 뜨거운 정치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차별개선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쟁점은 비정규직 숫자를 줄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것이다. 이번에 제출된 새누리당의 비정규직 법안을 보면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같은 근로보상을 제공해 차별을 개선하자는 것이 골자다. 비정규직을 차별하면 임금 및 근로조건 손해액의 10배 내에서 징벌적 금전보상명령을 내리고 나아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전면 폐지한다는 등의 보다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최근 몇몇 대형은행과 지방자치단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노·사·정 합의로 비정규직이 도입된 지 10년째 되는 해다. 비정규직 숫자를 줄이고 정규직화하자는 총론적 결정이 절체절명의 과제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3월 통계청 부가조사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580만9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3.3%다. 절대적인 숫자는 2003년 3월 이래 증가했지만 임금노동자 대비 비중은 2004년 8월을 정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고용형태나 사업체 규모에 따른 비정규직 고용을 들여다보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 10년간 비정규직 내에서도 한시적 근로자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시간제와 비전형 근로자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100인 이상 사업체 종사 비정규직 근로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100인 이하 사업체 비정규직 근로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을수록 임금근로자 중 시간제근로자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을 뭉뚱그려서 취약계층으로 보아 법과 정책으로 보호하자고 하지만 사업체규모별 성별 연령별로 성격이 매우 다른데 하나의 단일집단으로 포괄해 보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정규직 여부와 상관없이 영세기업 근로자들이 대기업 근로자들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이들은 노조를 만들어 항의할 힘조차 없다는 점이다. 100인 이상 사업체에 근무하는 비정규직들이 임금이나 사회보험 가입률 등 여러 측면에서 정규직에 비해 불이익을 받고 있지만 10인 미만 영세기업의 정규직보다는 훨씬 나은 처우를 받고 있는 것을 지나쳐버려서는 안 된다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임금수준만 놓고 본다면 300인 이상 사업체의 비정규직 임금이 10~29인 사업체의 정규직 임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10인 이하 정규직의 임금수준은 그보다 더 못하다.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처우개선에 대한 정책적 제안도 중요하지만 영세기업 근로자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에 더 많은 관심과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선배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현실에 안주해 잊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깨우쳐줘 항상 고맙다.

이인실 < 서강대 경제학 교수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