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공매도가 주가 끌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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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유럽발 위기로 코스피지수가 급락하자 공매도가 또 다시 뭇매를 맞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지난해 하반기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공매도를 ‘공공의 적’처럼 여기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다. 언론은 주가가 급락하면 ‘공매도 피해종목 다시 하락’ ‘공매도는 필요악인가?’ ‘시장교란 공매도 정부도 칼 빼들었다’ 등의 기사를 쏟아낸다. ‘공매도=나쁜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개입된 제목들이다. 정부도 다르지 않다. “공매도로 시장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발언만 봐도 그렇다. 공매도는 시장을 흔들고 주가를 하락시키는, 못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금융당국은 투자자들의 공매도 포지션과 거래내역을 당국에 보고토록 하고 이를 공시하는 등 공매도 규제강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또 다른 포퓰리즘일 뿐그런데 공매도는 정말 주가하락의 주범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공매도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국내·외 많은 논문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가하락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공매도를 제한할 경우 일시적인 가격하락은 막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주가에 거품이 끼게 되고 이후 하락 폭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에는 긍정적 정보와 부정적 정보가 늘 공존한다. 그런데 공매도 제한은 부정적 정보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가하락기 때마다 공매도는 매번 표적이 된다. 이는 주가가 오르는 것은 선이요, 내리는 것은 악이라는 단순 논리가 이면에 있기 때문이다 . 주가가 폭락해 손실이 커지면 사람들은 뭔가 희생양을 필요로 하고 그 대상이 종종 공매도가 된다는 얘기다. 물론 주식보유자들은 모든 매도세력들이 미울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까지 덩달아 주가하락기만 되면 공매도 규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또 다른 포퓰리즘일 뿐이다.
이런 논리라면 주가 급락 시에는 공매도뿐 아니라 선물매도, 콜옵션매도, 풋옵션매수 등 주가하락에 베팅하는 모든 투자행위를 동시에 금지시키거나 제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매물을 포함한 보유주식 매각도 제한해야 한다. 사실 지수선물 매도나 프로그램 매물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공매도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공매도에 앞서 이것부터 규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그리스를 닮은 공매도 규제
규제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외국도 공매도 제한을 한다는 이유를 댄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한국을 포함해 27개국이 공매도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유럽재정위기가 터진 지난해 8월에는 규제국이 7개로 줄었다. 효과가 미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나마 모든 상장주식의 공매도를 전면금지한 나라는 한국과 그리스 두 나라에 불과했다. 더욱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줄곧 금융주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최근에 다시 공매도 규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역시 우리나라뿐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주가가 좀 떨어지면 공매도 금지 민원이 폭주한다”고 토로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공매도 규제가 강한 이유다.
물론 공매도를 통한 시세조종이나 주가조작은 엄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불공정거래 단속 차원이지 공매도 자체에 대한 규제와는 전혀 별개 문제다. 주가가 폭락하면 정부는 투자자들에게 뭔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수단으로 공매도 카드를 쓰는 것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