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신격호·이용훈도 사찰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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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박영준 등 5명 기소 '민간인 사찰' 수사 종결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대상에 이건희 삼성 회장과 신격호 롯데 총괄 회장, 이용훈 전 대법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정·관·재계 주요 인사가 상당수 포함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몸통·윗선 못 밝혀 '용두사미'…靑 "죄송"
새누리당 "의혹 해소 미흡땐 특검 검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부장검사 박윤해)이 13일 발표한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 재수사 결과’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2010년 사찰한 건수는 총 500건에 달했다. 이 중 적법한 공무원 감찰 활동(199건) 외에 전·현직 국회의원(10명), 고위 공직자(8명), 전·현직 자치단체장(5명), 민간인(7명) 등에 대한 불법 사찰이 300여건이나 포함됐다.
검찰은 불법 사찰을 지시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52·구속) 등 5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해 ‘부진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 500건 사찰 중 3건 기소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날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48)과 최종석 전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42),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45)에 대해서만 공용물건손상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박 전 차관과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56)은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지원관실이 2008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사찰을 한 500건에 대한 수사 결과 3건에 대해서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판단, 추가 기소했다.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에 연루돼 이미 구속 기소된 박 전 차관의 경우 이 중 2건의 불법사찰을 지원관실에 지시한 혐의(직권남용)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차관은 2008년 10월 울산광역시가 추진했던 울산산업단지 조성 사업과 관련, 경남 창원의 S사 이모 대표로부터 1억원을 받고 경쟁사인 T개발과 울산시청 공무원들에 대한 불법사찰을 지시했다. 또 같은해 12월 민선단체장으로 공직감찰 대상이 아닌 경북 칠곡 군수를 사찰토록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앞서 구속기소된 이 전 비서관은 2010년 3월 K건업의 청탁을 받고 부산상수도사업본부가 K건업의 경쟁업체와 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로 추가 기소했다. 이 밖에 기존 불법사찰 의혹 외에 새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윗선’ 규명 실패, 윗선 자르기 수사 의혹
검찰은 박 전 차관 이상의 ‘몸통’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개입 증거를 찾지 못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불법사찰 지시·보고 비선라인과 증거 인멸에 대한 윗선 개입을 규명하는 것이 이번 수사의 핵심이라고 밝혀왔다. 지난달 검찰이 확보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에 따르면 불법사찰 지시는 ‘VIP(대통령)→비선→지원관실’의 경로로, 보고는 그 반대 경로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검찰은 그러나 비선 인사로 박 전 차관과 이 전 비서관만 밝혀내고 그 ‘윗선’은 찾지 못했다. 최근 임태희,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 권재진 전 민정수석(현 법무부장관) 등에 대해 서면조사도 했으나, 사건 개입 의혹을 밝히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선 ‘윗선 자르기’를 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총수 등 전방위 불법사찰
이날 발표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신격호 롯데총괄 회장, 이용훈 전 대법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엄기영 전 MBC 사장 등 대기업 총수와 전·현직 고위 공직자 등 주요인사 30명에 대한 불법사찰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심정”이라고 사과한 뒤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각별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이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데 미흡한 점이 있다면 특검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