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병영 이야기] 떠밀려 간 '軍 통신병 경험' 내 삶의 경쟁력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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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웨이브 운용병 복무…이론·실무 겸비, 금성전기 입사
인텔서 통신전문가로 CEO 올라
이희성 < 인텔코리아 사장 >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곳이 군대다. 요즘 청년들이 군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군대는 지금의 내 삶에 커다란 발판이 됐다.
군에 입대한 것은 1983년 1월이었다. 대학 시절 연극에 빠져있던 내게 부모님은 입대를 권했다. 전공이 전자공학이었던 터라 통신병 주특기를 받고 통신학교에 배치됐는데, 이 순간이 내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 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통신학교에서 18주 동안 통신 기초교육을 받고 자대인 2군 사령부 통신여단에서 마이크로 웨이브 운용병으로 2년반 동안 근무했다. 군 보안상 자세히 밝히긴 어렵지만, 마이크로 웨이브 운용병의 역할은 중요하다. 명령과 지휘체계가 생명인 군대에서 통신은 이를 전달하는 핵심 플랫폼이다. 그리고 마이크로 웨이브는 군 통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비 중 하나다. 유무선 전송장비, 다중화 채널장비, 교환대 등 모든 유무선 기술을 총괄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마이크로 웨이브 운용병의 의무다. 더군다나 당시 군이 사용하던 무선통신 기술은 지금도 사용될 만큼 기술력이 앞서 있었다. 첨단 통신기술을 습득하는 데 이만한 기회도 없었다.
군에 있으면서 당시 국내 장거리 전화 네트워크 및 통신체계를 꿰뚫게 되었다. 제대 후 곧바로 금성전기에 입사한 것이나 그 뒤 인텔코리아로 옮겨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군 시절의 다양한 네트워크 및 통신 실무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군 입대 대신 병역특례를 택했다면 지금 평범한 연구원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또 통신학교에서 전체 성적은 높았음에도 한 과목에서 과락하는 바람에 교수요원이 되지 못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돼 이론을 넘어 실제 운용방법까지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마이크로 웨이브 운용병은 하늘이 만들어준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18주간 통신학교 교육생활은 통신 이론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하지 않았던, 회로에 대한 실험도 할 수 있었다. 교육수료 뒤 자대에서는 장비운영에 대한 실무까지 배웠다. 군의 통신은 사소한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았고, 이론과 장비운영을 철저히 배우게 됨으로써 통신망에 대한 전체 개념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었다. 이때 배운 방대한 통신망에 대한 이해는 지금까지도 나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인텔은 1990년대 후반부터 휴대폰용 모뎀칩, 네트워크 프로세서 등 다양한 통신 제품을 통해 통신사업을 강화하면서 통신이 인텔의 주요 사업 영역이 됐다. 많은 동료들은 인텔의 기존 주력 분야인 PC 전문가였지만, 통신에 있어선 내가 사내에서 독보적이었다. 통신의 큰 그림을 보고 미국 본사의 관련 임원들과 논쟁을 벌일 수 있었고 능력도 인정받게 되었다. 나는 결국 인텔코리아 통신사업 부분장을 거쳐, 아시아태평양 통신사업 디렉터로 발탁된 뒤 2005년부터 인텔코리아 사장을 맡고 있다. 떠밀려 간 입대였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군 경험은 내 인생에 튼튼한 뿌리가 됐다. 지금껏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던 때가 두 번이라고 생각되는데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 때와 나머지 하나가 바로 군대다. 어떤 사람은 군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다고도 하는데, 나의 군 생활은 인생 진로를 결정하는 데 8할 이상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군에서 배웠던 통신 실무경험은 나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되었고,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인텔에서 통신전문가로 인정받아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이희성 < 인텔코리아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