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용품업체 '살림하는 男'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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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락앤락·코멕스 인터넷몰 남성고객이 절반고려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재학 중인 이병원 씨(35). 서울 용산의 오피스텔에서 ‘화려한 싱글’ 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씨는 미혼 친구와 함께 캠핑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식기를 준비하기로 한 이씨는 인터넷쇼핑몰에서 밀폐용기와 물병 등을 주문했다. 그는 “클릭만 하면 바로 배달해주기 때문에 쇼핑몰에 자주 접속한다”며 “수납함 같은 가구류까지 다양한 제품을 살 수 있어 애용한다”고 말했다.
광고 컨셉트, 男心 겨냥 '섹스 어필'로 바꿔
음식 빨리 익히는 '스피드쿡' 등 전용제품도
남성 고객이 주방생활용품업계에서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초혼연령이 늦어지는 데다 독신·이혼 등의 이유로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살림하는 남성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남성 고객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남심(男心)을 잡기 위한 디자인과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국내 1위 주방용품업체 락앤락은 인터넷쇼핑몰 ‘락앤락몰’ 회원 가운데 남성 비중이 45%에 육박한다고 14일 밝혔다. 여성 비중(55%)과 불과 10%포인트 차이로 고객 2명 중 1명이 남성인 셈이다. 2008년만 해도 꼈� 비중은 20% 초반으로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 회사 인터넷팀의 한승렬 차장은 “남성이 늘어나고 있을 걸로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코멕스산업도 마찬가지. ‘코멕스 쇼핑몰’의 남성 비중은 약 40%로 조사됐다. 2008년 20% 대비 2배로 늘어났다. 유리밀폐용기 ‘글라스락’으로 유명한 삼광유리의 정구승 마케팅 부장은 “남녀 비중을 집계하고 있지는 않지만 남성 고객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건 확실하다”고 했다.
업계는 ‘남성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당장 광고와 제품에서 ‘주부’나 ‘주방’ 등 여성성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코멕스산업은 아예 새 광고 컨셉트를 ‘섹스 어필(sex appeal)’로 잡았다. 주부 대신 3명의 늘씬한 외국인 모델들이, 주방이 아닌 야외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채 제품을 소개하는 광고다. 회사 측은 “급증하는 남성 고객과 뜨거운 여름을 두루 겨냥한 광고”라고 설명했다. 락앤락은 락앤락몰의 수식 문구를 바꿨다. 기존 ‘살림하는 재미가 솔솔’이 여성에만 한정됐다는 판단에 따라 ‘생활을 디자인하다’로 문패를 바꿔 걸었다. 음식을 빠르게 익혀주는 ‘스피드쿡’과 플라스틱 수납함 등 남성의 취향에 걸맞은 제품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삼광유리는 아예 남성 전용 아웃도어 용품 브랜드 ‘아우트로’를 론칭했다. 조작이 간편한 ‘원터치 오픈’ 방식을 적용하는 등 남성들이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프로야구 시즌에 맞춰 글라스락과 아우트로 제품을 협찬하는 등 스포츠마케팅에도 열심이다.
주방용품을 직접 구매하는 남성들이 늘어나는 것은 늦게 결혼하는 ‘만혼’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인구학회에 따르면 2010년 남성의 초혼 연령은 31.8세로 1990년 27.9세에서 3.9세 늦춰졌다. 35~39세 미혼 남성 비중이 1995년엔 6.1%에 머물렀지만, 2010년 25% 수준으로 급증했다. 15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경숙 락앤락 이사는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집안 살림을 직접 챙기는 구매력 있는 남성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라며 “어떻게 남성을 공략하느냐가 업계의 새로운 화두”라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