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년 모래언덕…일본서 즐기는 사막여행

열도의 비경 돗토리현

동서 16㎞·남북 2㎞ 砂丘 장관…샌드보드·낙타체험 다채
모래박물관선 매년 페스티벌…올해는 '대영제국' 편 전시 중
'요괴인간 타요마' 작가의 고향…거리 곳곳 만화캐릭터 넘쳐나
900년 전통 미사사 온천 등 라돈 많아 湯治효과 입소문

한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 촬영지로 유명해진 돗토리현은 일본 주고쿠(中國)지방의 북쪽이다. 제주도 두 배만한 면적에 제주도와 비슷한 59만명의 인구가 사는 한적하고 작은 현이다. 어딜 가나 조용하지만 가는 곳마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어 복잡한 마음을 털어내고 자유롭게 여행하기에 좋다.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경관과 깨끗한 마을 거리는 정감이 간다. 인천에서 요나고 공항까지 하늘길은 불과 1시간10분여. 출국부터 입국 수속까지 3시간 안에 끝난다.

◆사라지는 아름다움, 사구와 모래조각돗토리 평야의 센다이강 하구에는 동서 16㎞, 남북 2㎞에 걸쳐 모래언덕이 있다. 유명한 돗토리 사구(砂丘)다. 인근 주고쿠 산맥의 모래가 10만년 동안 쌓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사구의 가장 높은 곳 ‘우마노세(말의 등)’에서 확 트인 바다(동해)를 볼 수 있다. 뒤를 보면 사막, 앞을 보면 바다. 서쪽에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 동쪽에는 샌드보드를 타는 사람들의 표정이 즐겁다. 샌드보드는 초보자도 금방 배울 수 있고, 푹신한 모래여서 다칠 걱정도 없다. 사막에 온 기분을 한껏 내려는 사람은 낙타를 타고 오아시스까지 거닐기도 한다.

사막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허기가 진다. 근처에 작지만 유명한 회덮밥집이 있다. 우리의 회덮밥처럼 잘게 썬 회와 채소에 초고추장을 비벼 먹는 것이 아니다. 갓 지은 밥 위에 살짝 익힌 문어와 게살, 참치새끼와 새우, 가리비 등의 생살을 통째로 올려 와사비와 간장을 뿌려 먹는다. 독특한 향이 나는 깻잎과 식초에 절인 락교도 곁들인다.

사구에 온 김에 인근 유명한 모래미술관을 찾았다. 2006년 개장 이래 ‘모래 세계여행’이라는 컨셉트로 매년 다른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1회 이탈리아전을 시작으로 지금은 다섯 번째인 영국 편 ‘전해져오는 대영제국의 번영과 왕실의 자부심’ 전이 열리고 있다. 영국 편은 내년 1월6일까지 전시된다. 특히 이번에는 실내 전시공간을 넓혀 10개국 15명의 유명 모래 조각가들이 2500의 모래를 이용해 유명 건물이나 역사적인 사건 등을 모티브로 한 20여점의 작품을 만들었다. 마침 야외에서 작품을 공개 제작하고 있던 모래조각 25년 경력의 종합 프로듀서 차엔 가쓰히코 씨(51)를 만났다. 2명의 인부와 함께 뙤약볕 아래에서 모래에 물을 뿌려가며 조각을 하던 그는 “세계 최초로 모래조각 전문 실내 미술관을 지어 전시할 예정”이라며 “조각가들이 햇빛과 비바람을 걱정하지 않고 제작에 집중해 높은 수준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과 모래만으로 만드는 작품이어서 8개월밖에 보존할 수 없다고 한다. 곧 사라질 걸 알면서도 왜 혼신을 다해 작품을 만드는 걸까. 그는 “바로 눈앞에서 작품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그게 모래조각의 특성”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사라지게 놔둘 수 없는 것들

사라진다. 사실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이 만든 것들과, 사람들마저도….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사라지고 난 후에야 그리워하고 아쉬워한다. 무언가 보존하고 기억한다면 그 당혹스러운 상실감을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박물관과 기념관을 짓는 것일까? 일본은 1949년 나라현 호류지(法隆寺) 금당의 화재 이후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해 보다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보호체계를 마련했다. 문화와 민속에 관련된 유·무형의 모든 것들을 보존·계승하려는 흔적은 돗토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산인지방에 남아 있는 메이지 시대 유일한 서양식 목조건물로,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받은 진푸카쿠(仁風閣)는 1907년 돗토리 성주였던 이케다 가(家)의 별장으로 지어졌다. 프렌치 르네상스 양식의 화려한 건물과 그림 같은 호류인(寶隆院) 정원에서 당시 권세가의 품격이 느껴진다. 재력가의 집도 있다. 지즈(智頭)의 산속에 있는 대저택인 이시타니케 주택인데 1만㎡의 택지에 방이 40개, 창고가 7개나 된다. 1919년부터 10년간 일본 각지에서 좋은 목재들을 들여와 개축했다.

구라요시의 시라카베 창고군은 100년 전 창고 건물과 상인들 집인데 붉은 지붕과 흰 벽의 건물 외곽 수로에 잉어와 인면어가 살고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을 소개하는 박물관 가와하라 성도 가볼 만하다. 3층까지는 박물관이고, 4층에 복도식 전망대가 있는데 돗토리의 최고봉인 다이센에서 뻗어내린 산천을 360도의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 중요 문화재인 덴슈카쿠(天守閣)를 본떠 지었다고 한다.

돗토리현 동남부 와카사에는 1930년대의 풍경이 있다.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증기기관차가 와카사 역에서 칙칙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100엔만 내면 누구나 탈 수 있고 추가 요금을 내면 선로의 끝에서 40 무게의 기관차를 어른 4~5명의 힘으로 회전시키는 수동식 전차대 시설을 체험할 수도 있다.◆900년 전통의 미사사 온천

일본 여행에서 온천을 빼놓을 수는 없다. 돗토리에도 많은 온천이 있는데 900년 전통을 간직한 미사사 온천은 병을 치료하는 온천수로도 유명하다. 라돈을 함유하고 있어 면역력과 자연 치유력을 높여주는 방사선 호메시스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미사사 강에는 울음소리가 고운 개구리가 살며 곳곳에 무료 족욕탕과 노천탕이 있다. 온천수를 직접 마셔볼 수도 있다. 온천가의 한 전통 료칸에 여장을 풀었다.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와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이다.

료칸에 묵으면 한번쯤 가이세키 정식을 먹어 보는 것도 좋다. 기모노를 입은 직원이 순서대로 음식을 날라다 주는데 생선회부터 고기와 튀김 등 갖가지 요리들이 색색이 아름다운 반찬과 함께 차려진다.


◆타요마·코난…살아 움직이는 만화 캐릭터들

돗토리에서는 만화 속 캐릭터들도 살아난다. 돗토리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만화 ‘요괴인간 타요마’의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와 ‘명탐정 코난’의 작가 아오야마 고쇼(靑山剛昌)의 고향이기도 해 만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 만화 관련 행사도 다양하게 열리는데 오는 11월7~10일 요나고 컨벤션센터에서 제13회 국제만화가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미즈키시게루 기념관에서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요괴 연구가이자 만화가인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만화 속 주인공들을 테마로 꾸민 길인 미즈키시게루 거리에는 요괴 동상과 그림들이 넘쳐난다. 그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데 게다(왜 나막신) 끄는 소리와 함께 애꾸눈 요괴 타요마가 나타나 포즈를 취해준다.

사카이미나토 역과 요나고 역 사이에는 요괴를 테마로 한 열차도 운행된다. 또 아오야마 고쇼의 고향인 호쿠에이정에는 아오야마 고쇼 고향관과 코난거리가 있다. 코난거리 역시 맨홀 뚜껑부터 가로등까지 코난이 없는 것이 없다. 명탐정 코난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래핑 열차가 돗토리~요나고 역 구간을 하루 4~5번 운행한다.


[여행 팁] 1000엔으로 3시간 택시관광 '알뜰투어族' 유혹

돗토리현까지는 아시아나항공 정기편(인천~요나고, 주 3회)에 더해 DBS크루즈훼리가 강원도 동해항에서 주 1회(목요일) 출발한다. JR(일본철도) 돗토리역 안에 관광안내소(0857-22-3318)가 있지만 일어나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북쪽 출구로 나가보자. 오른편의 국제관광객서포트센터(0857-36-3767)에 가면 한국어에 능통한 안내자를 만날 수 있다. 관광 안내는 물론 숙박 수속 통역도 도와준다.

단돈 1000엔으로 3시간 동안 택시관광을 즐길 수 있는 외국인 관광객 대상 서비스가 유용하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 정상 요금은 5분에 1000엔을 넘는다. 최대 4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파격적인 혜택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택시투어 전날 오후 6시까지 센터에 예약하면 된다. 택시가 남아 있을 경우엔 예약 없이도 신청 후 10분만 기다리면 이용할 수 있다. 별도의 가이드는 없고 택시기사가 안내 및 도움을 준다. 가고 싶은 코스에 대해 미리 통역을 부탁하고 센터에서 제공하는 손가락 회화집을 활용하자. 돗토리 시내 주요 관광지 입장료 할인 및 기념품 증정 ‘쿠폰카드’도 덤으로 받는다.
여유롭게 시내를 관광하려면 역을 기점으로 순환하는 100엔 버스도 좋다.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돗토리성 유적이나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난감박물관 와라베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1회 승차는 100엔, 하루 승차권은 300엔이다. 관광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돗토리시 서울관광데스크(02-737-1122)를 통해 상담받을 수 있다.

돗토리=한성호 기자 sung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