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의협회관서 열린 두 기자회견

이준혁 중기과학부 기자 rainbow@hankyung.com
18일 오전 10시 서울 동부이촌동의 의사협회 회관. ‘포괄수가제 강행 논리 반박 기자회견’이 열린 이곳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회관 안에서 열린 의사협회 집행부의 기자회견은 회관 입구에서 열린 전혀 다른 성격의 기자회견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이 ‘의협, 포괄수가제 즉시 수용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의협회관에서 개최한 것.

회관 3층 동아홀에선 노환규 의협 회장이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포괄수가제를 하지 않으면 늘어나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데, 의료비 급증은 의사들의 과잉진료 탓이 아니라 고령화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지난주 정부의 포괄수가제 정책에 맞서 안과·외과 등의 수술을 거부하겠다고 공언했던 투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노 회장은 “수술 거부는 오보다. 무작정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국민 설문조사를 거쳐 국민의 뜻에 따라 결행할 것”이라고 군색하게 변명했다.

그는 작심한 듯 “포괄수가제는 진료의 양과 질에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을 지불하는 정찰제다. 공공병원에 사용한다면 괜찮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민간병원에 적용한다면 병원 운영자들이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고 환자를 일찍 퇴원시키게 될 것”이라며 포괄수가제 반대 논거를 들었다. 이 논리에 의하면 불성실한 치료, 저질 의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만하다.

하지만 노 회장의 말 속에는 이미 상업화된 의료를 인정하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병원도 일단 돈을 벌고 봐야 한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 같다. 한국 의료계의 선구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는 “소의(小醫)는 병을 고치고 중의(中醫)는 사람의 마음을 고치고 대의(大醫)는 사회(나라)의 병까지 고치는 의사”라고 했다. 유 박사는 “의사가 돈을 먼저 생각하면 안 된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 돈이 우선시돼선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지금 우리 사회에 과연 대의나 중의가 있는가. 의료수가가 낮아지면 수술을 안 할 수도 있다는 의사는 뭔가. 그런 의사는 소의도 되지 못한 상의(商醫)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의사는 하늘이 내리는 천직이라고 한다. 환자의 생명을 우선시하다가 비싼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개인병원이 나온다면,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돕지 않을까. 투쟁전선에 나선 의사들은 이 땅의 헌신적인 선배 의사들을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이준혁 중기과학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