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급식규제에 날벼락…8개월째 발령대기

대·중기 상생 정책에 우는 새내기 직장인

급식 1위 아워홈 합격 이아영 씨
어려운 가정에 희망이었는데…정식발령 기다리며 알바 전전
회사 "9월 중 우선 배치"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그렇게 좋아하던 부모님도 이젠 제 눈치를 봐요. 희망이 불안으로 변해서요.”

지난 2월 서울 한양여자대학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이아영 씨(23·왼쪽)는 작년에 국내 급식업체 1위인 아워홈에 합격했지만 8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못받는 ‘채용 예정자’ 신분이다. 20일 만난 그는 “‘희망’이라는 짧은 단어가 요즘 가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작년 10월25일, 이씨는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직장으로 꼽는 아워홈에 합격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이씨의 합격소식은 가족에게 특별했다. 집안의 잇단 불운을 한 방에 잠재울 수 있는 희망의 불씨였다. 2년 전인 2010년 8월 아버지가 운영하던 천안의 자동차시트 공장은 화재로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다. 이후 생계를 책임져오던 어머니마저 개인 파산신청을 한 터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맏딸의 취직은 구원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졸업 후 부푼 꿈에 하루 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지난 3월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의 공공기관 급식사업자 참여를 배제하기로 한 정부의 조치로 범LG계열 기업으로 분류된 아워홈은 기존 사업장 재계약은 물론 신규 확장도 힘들어졌고 합격자들의 정식발령을 연기한다는 통보를 했다. 정부는 당시 영세 중소업계 지원 차원에서 공공기관 구내식당 위탁운영에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을 배제하기로 했다.

사업장 확장을 염두에두고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계약 기간이 끝난 사업장에서 철수하면서 기존 인력 배치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었다. 발령대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씨는 지난 3월 이후 산업 현장을 방문하는 초등학생들을 하루 6시간 안내해주고 3만6000원(시급 5100원)을 받는 인솔교사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방학이 다가오면서 최근 접어야 했다.이씨는 “정식 발령이 나면 가장 먼저 부모님과 동생들을 의료보험에 올리려고 했는데…. 가족 중 누구라도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이씨와 처지가 비슷한 동기생은 37명이 더 있다. 작년에 100명이 합격, 이 가운데 62명은 아워홈이 운영하는 식당에 영양사로 정식발령이 났다. 하지만 올해 졸업과 동시에 영양사 자격을 딴 이씨와 동기생 37명은 여전히 정식발령을 손꼽아 기다린다.

회사 측은 9월에 각 사업장의 인력을 늘려 우선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씨와 동기생들은 불안하다. 이씨는 “대기자 신분이 길어지다보니 동기들 중엔 ‘9월 배치가 확실한지 어떻게 알겠냐, 정부의 규제가 안 풀리면 회사로서도 어쩔 수 없지 않겠나’라고 체념한 동기들도 있다”고 전했다.이 회사가 운영하던 사업장의 재계약이 연이어 불발되는 것도 대기발령자들을 불안하게 한다. 지난달에는 8월 말 계약이 끝나는 코레일 식당운영 사업에서 배제당했다. 조규철 아워홈 홍보팀장은 “올해로 계약이 끝나는 사업장이 29개”라며 “기존 사업장이 문을 닫으면서 유휴인력이 생겨 고민이지만 작년 합격자를 9월에 우선 배치한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상 영양사는 철저한 건강검진과 교육이 필수여서 정식발령까진 3~4개월은 걸린다”며 “2010년엔 국내에서 6번째로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하는 기업이었는데 정부의 규제가 이어지면 내년부터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