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챔피언' 이인우 "너무 신중하면 나쁜 생각 더 나…아이 얼굴 떠올리고 바로 치죠"

볼빅 오픈 골프 우승

5년전 한국오픈서 쓰린 경험…'자기 암시' 필요성 깨달아
스윙 교정으로 작은 체격 보완
불혹의 나이에 남자프로골프대회에서 우승컵을 안기는 쉽지 않다. 좋은 체격 조건과 스윙을 갖춘 젊은 선수들이 대거 배출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난주 볼빅-힐데스하임오픈(이하 볼빅오픈)에서 초대 챔프에 오른 이인우(40·사진)는 2005년 기아로체클래식에서 첫승을 따낸 뒤 다시 정상에 서기까지 7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다시 우승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보다는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놓치지 말자”고 되뇌었다고 한다.볼빅오픈 마지막날에는 6명이 공동선두였고, 1타차 2위도 많았다. 누구도 우승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2007년 한국오픈 마지막날을 떠올렸다. 당시 최고 선수로 꼽히던 비제이 싱(피지)과 마지막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하던 날, 그는 78타를 치고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초반 3개홀 연속 보기를 하고는 마음이 급해졌어요. 만회하려는 욕심에 공격적으로 치다가 더 안됐던 거죠. 갤러리들이 ‘이인우 쫄았다’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고요. 정말 ‘멘붕(멘탈붕괴)’ 상태였죠. 복싱에서 흰 수건을 던져 기권하듯 정말로 누군가가 페어웨이로 흰 수건을 던져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는 “비제이 싱이란 높은 벽 앞에서 스스로 무너져내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싱을 극복하기 힘든 상대라고 지레 겁을 먹고, 넘어서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기량 차이가 있더라도 최고의 컨디션으로 임한다면 해볼 수도 있는데 미리 포기한 거죠.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는 천상 프로골퍼다. 어릴 적 꿈이 골프선수였다. 서울 타워호텔 골프연습장에서 레슨을 한 부친 이원만 씨의 영향으로 열세 살 때 골프채를 들었다. 톰 왓슨과 잭 니클라우스를 우상으로 삼고 대선수를 꿈꿨다. 지금까지 골프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키 169㎝, 몸무게 68㎏으로 운동선수치고는 작은 체격이지만 꾸준한 몸 관리와 스윙 교정으로 체격적인 핸디캡을 보완했다. 2009년 어이없이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연습장에서 한 프로 지망생이 골프볼을 멀리 던지는 것을 보고 이를 따라하다가 어깨에 찌릿한 느낌이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이 심해졌고 팔을 들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오른쪽 바지 뒷주머니의 지갑을 왼손으로 꺼내야 했고 안전벨트도 왼손으로 착용했다. 그래도 대회는 나갔다. “백스윙을 크게 하지 못해 티샷한 뒤 한동안 어깨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있어야 했어요. 오랜 기간 재활훈련을 해야 했는데 지난해부터 회복되더군요. 그 후로는 코스 내 돌멩이도 조심스레 대하게 됐지요.”

30년 가까이 골프를 쳐온 그는 “골프는 샷을 하기 전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티박스에 섰을 때 페어웨이가 아주 좁아보인다거나 OB, 벙커 등을 떠올리면 그대로 됩니다. 최고의 샷과 최고의 지점을 생각하고는 자신있게 쳐야죠. 상투적이고 뻔한 소리 같지만 그게 가장 중요해요.” 그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새가 없도록 준비과정을 짧게 하고 빠르게 플레이하려고 노력한다. 신중하게 치려고 하는 순간 잡생각에 지배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전 열두 살 난 딸과 여섯 살짜리 아들의 예쁜 모습을 떠올려요. 그러면 몸속에서 엔돌핀이 솟아나오고 순간 힘이 생기는 걸 느껴요.”

평균 드라이버샷 260~270야드인 그는 “지금도 거리를 늘리려고 노력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했다. “장타가 유리한 게 사실이니까 지속적으로 스윙을 교정하고 체력훈련을 합니다. 그래야 지금의 거리라도 유지하죠.”그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맞는 코치를 택해 꾸준히 스윙을 교정해야 핸디캡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