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일 군사협정의 손익계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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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주장보다 국익 따져봐야지난 29일로 예정됐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의 서명이 연기된 것은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애초부터 부정적인 여론을 잘 알면서도 협정 체결을 하려고 한 것은 북한의 위협을 감안할 때 한·일 간 군사정보 교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핵무장 의혹에 따른 대일 불신이 가중되면서 정부는 부정적인 여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는 비밀리에 한·일 군사협정을 정부가 ‘졸속, 밀실’로 통과시키려고 했다는 비난에 직면하면서 정부는 협정에 대한 추진의지를 잃어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2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회와 국민들에게 협정내용을 소상하게 공개하고 오해가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외교정책은 일관성 유지가 생명…여론 의식말고 국민설득 나서길
진창수 <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jincs@sejong.org >
한·일 관계에서는 이전부터 국익과 여론 사이의 갈등이 존재했다. 예를 들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을 당시 여론은 ‘국민의 피를 돈으로 구걸했다’고 비난했지만, ‘대일청구권 자금’이 지금의 한국 경제발전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는 이의를 달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한·일 문화개방도 ‘문화 식민지’를 우려했던 당시 여론과는 달리 ‘한류’붐과 함께 한국의 문화가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됐다. 한·일 관계의 역사에서 볼 때 여론보다는 차분히 국익을 생각하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문제는 대일정책에서 국익의 계산법이 점차 복잡해지고 어렵게 되고 있다는 데 있다. 냉전시대의 국익 계산법은 반공과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그 저항도 쉽게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한·일 경쟁, 북핵문제, 중국의 부상, 그리고 미국의 전략 변화라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국익을 바라보는 인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일 군사협정을 통해 앞으로 한국이 한·일 관계와 국제질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논란을 가져오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대일정책을 합리적인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첫째 일본의 전략적인 가치를 냉정한 국익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번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일본과의 군사협정 득실을 따지기도 전에 발목을 잡았다. 물론 최근의 ‘독도 망언’ ‘종군 위안부의 부정’ ‘핵무장 의혹’ 등의 문제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한·일 간의 감정적인 부분이 국익 계산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한·일정보보호협정’은 북한의 동향, 핵 미사일에 대한 정보, 그리고 중국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번 협정이 이뤄지면 한국의 정보 선택 폭이 높아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한·일 군사협정의 논란에서 허황된 감정적인 주장보다는 합리적인 이해득실을 따지는 국익이 우선돼야 한다.
둘째 정부는 대일정책에 대한 대국민 설득을 피하지 말고 명확히 방침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번 협정 논란은 정부가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쉬쉬하며 진행하다보니 ‘뭔가 하지 말아야 할 협정을 몰래 체결한다’는 인상을 주게 돼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 예로 협정의 공식 명칭이었던 ‘군사정보보호협정’에서 ‘군사’를 뺀 ‘정보보호협정’이라는 꼼수를 부린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앞으로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대국민 설득외교를 피하지 말고, 일본이 한국에 어떤 중요성을 지니는지, 또한 대일협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과의 ‘건설적인 소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외교정책이 국익의 관점에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 내 컨트롤 타워의 기능이 필요하다. 이번 혼란의 과정을 보면 정부 내의 불일치도 한몫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국방부가 한·일 군사협정을 담당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자 정부 내 혼선으로 이어지며, 책임전가 현상마저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외교정책이 국내외적으로 신뢰를 가지기 위해서는 외교시스템의 개선이 불가피하다.
진창수 <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jincs@sejong.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