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反旗'냐, 소송대비 '명분쌓기'냐

[강경한 한전 이사회] '퇴짜'안보다 높은 전기요금 인상률 재심의

한국전력 이사회가 지난달 8일 정부에서 거부당한 13.1%의 인상요율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재심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전력 판매로 눈덩이처럼 쌓이는 적자의 악순환 구조를 두 자릿수 이상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깨야 한다는 게 한전이 내세우는 명분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소액주주들의 추가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에 대립각 세우는 한전한전은 작년 상반기 16.2%의 전기료 인상 요구안을 제출해 4.9%, 하반기에는 13.2%를 요구해 4.5% 각각 올렸다. 1년에 두 번이나 올렸지만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한전 측 시각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전기요금을 억누르는 정부에 밀릴 경우경영 부실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다.

한전의 누적적자는 2008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 8조원이 넘는다. 한전 관계자는 “요금 현실화가 병행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늘어나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전력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한전의 부실은 전력설비 투자 및 유지보수의 제약으로 이어져 만성적인 전력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서는 연간 10조원 이상의 투자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전은 특히 전체 전력 판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 이번 이사회에서 논의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률은 20%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관계자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산업용(계약전력 300~1000kw 미만 기준) 전기료가 원가 이하로 책정되면서 산업계가 혜택을 본 금액은 14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소액주주 소송이 부담요인

두 자릿수 요금 인상에 대한 한전 이사진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보인다. 김중겸 사장은 지난 4일 한전 협력기업 간담회에서 “전기요금 인상 요구는 단순히 적자경영 보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며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원가보다 싼 전력으로 에너지 수요가 몰리면서 발전소 연료로 쓰이는 석유 가스 등 1차 에너지원 수입이 증가하는 등 국가적으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김 사장의 논리다. 한전 이사회가 인상률을 5% 이내로 묶으려는 정부의 방침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향후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만에 하나 제기될 수 있는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해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인상을 위해 정부를 상대로 최대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는 증거를 남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한전이 요금인상 억제를 위한 정부의 직·간접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강경하게 버티는 모양새를 띠면서 정부의 공기업 통제력이 상실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정부와의 정책 조율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통제력을 잃었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며 “경영부실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기업 본연의 설립 취지를 생각할 때 전기요금 인상을 최소화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