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우 벤처기업협회 회장 "벤처 실패해본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죠"

임원으로 채용…우리 회사 주역
"밥 굶지 않겠다"는 생각에 공대 진학…안철수와 동기
대기업 답답함에 벤처 창업

다산네트웍스는 '프리덤 회사'…형식에 얽매일 필요 없어

"누구나 창업 쉽게 벤처 생태계 개선하겠다"

“와인 얘기라면 혼자서 몇 시간이라도 할 수 있어요. 거뜬하죠.”

남민우 벤처기업협회 회장(50)은 서울 청담동에 있는 ‘알리고떼’에 자리를 잡자마자 이같이 호언장담했다. “신대륙 와인 중에는 오퍼스원이 좋은데 프랑스 메독 지방의 샤토 라피트 로칠드가(家)와 로버트 몬더비가 합작해 만든 브랜드죠.” 그는 대륙별 와인의 족보와 특징을 입담 좋게 풀어놨다.남 회장의 와인 강의에 입이 벌어질 즈음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그는 ‘투핸즈 엔젤스 셰어(Two Hands Angel’s Share)’라는 호주산 와인을 주문했다. 남 회장은 “투핸즈는 블랙베리 향이 매우 깊다”고 말했다. 마치 소믈리에처럼.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최고경영자(CEO)의 와인 얘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놨다고 했다. “A4용지 여섯 장 분량의 글을 읽어보면 와인 공부는 끝입니다.” 정말이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약간의 BNG(뻥과 구라)도 있고.” 진지하게 얘기를 듣고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블로그는 ‘루미 남민우’를 검색창에 치면 바로 뜬다. 루미는 그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

지난 2월 벤처기업협회 공동 회장에 오른 남 회장은 통신장비업체 다산네트웍스 창업자 겸 CEO다. 1993년 설립한 다산네트웍스는 초고속 인터넷·무선랜·이동통신 관련 장비를 만드는 업체다. 매출 규모는 1300억원 정도. 최근엔 소프트웨어와 보안 업체 등을 인수, ‘종합 통신솔루션 그룹’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형식주의는 ‘노’

와인 얘기를 하다 보니 기다렸던 바비큐, 피자, 파스타 등이 나왔다. 남 회장은 “많이 먹으라”며 각자의 접시에 음식을 나눠줬다.

그는 “내 블로그에 가보면 빅뱅 이론, 금융의 역사, 인간의 심리 등에 대한 글도 있다”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남 회장은 안랩(옛 안철수연구소)을 창업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과 함께 ‘벤처 1세대’ 대표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메인 메뉴를 맛나게 먹은 뒤 대화 주제가 직장문화 쪽으로 옮겨왔다. 남 회장은 다산네트웍스를 ‘프리덤(freedom·자유) 회사’라고 표현했다.

회사에 머리를 붉게 염색하거나 빨간 쫄바지를 입는 사원도 있다고 했다. 복장뿐 아니다. 직원들은 출근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도 있다. 육아 문제로 힘든 직원들은 재택 근무도 할 수 있다. 그는 “일정한 룰을 자유롭게 정한 후 그걸 잘 지키기만 하면 된다”며 “일만 제대로 하면 되지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무실에 ‘하고자 하는 자는 방법을 찾고, 하기 싫어하는 자는 핑계를 찾는다’는 액자를 걸어놨다며 “직원에게 결과가 아니라 자세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다”고 강조했다.그의 ‘노재킷 노타이’ 차림에서도 프리덤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남 회장은 공식 행사에도 이 같은 차림으로 나간다. “실리콘밸리에 가면 다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그걸 보고 예의가 없다고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종의 벤처정신이기 때문이죠.”

○위기를 극복하고 제2 도약 꿈꾼다

식사를 마무리하자 샴페인을 서비스로 주겠다고 했다. 샴페인 건배를 제안하면서 남 회장은 어린 시절에 대해 풀어놨다. 전북 익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의 어릴 적 꿈은 오직 ‘굶지 않고 살기’. 이를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진,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공대를 간 것 역시 굶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그는 “공대에 가면 적어도 밥은 먹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대를 나왔지만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하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3년부터 대우자동차 엔지니어로 6년간 근무한 것. 하지만 종종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무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그래서 중소기업 쪽 이직을 선택했다. 그러나 곧 후회하고 말았다고 한다. 다니던 중소기업에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스카우트 당시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않았던 탓이다. 그는 “그때 평생 할 고생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창업은 그가 한 세 번째 선택이었다. 1991년 회사를 그만둔 후 코리아레디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 수입업체를 차렸다. ‘예열’을 마친 그는 2년 뒤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다산네트웍스를 세웠다.

창업하고 나니 험난한 일들이 많았다. 남 회장은 “죽기살기로 버텼다”며 “사업을 시작하고 1년 동안은 잠을 거의 못잤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환율이 치솟아 거래처에 대금 지급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거래 업체가 6개월간 지급을 유예해줬다. 그 업체는 대신 남 회장과 직원들을 실리콘밸리로 초청,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도록 했다.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면서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때 기적처럼 독일 지멘스가 합작법인을 제안해왔다. 그는 지멘스와 협의 끝에 다산네트웍스를 2004년부터 4년 동안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 계열사로 전환했다. 투자를 유치한 것. 남 회장은 2008년 오뚝이처럼 지멘스 지분을 다시 인수, 회사를 되찾았다.

남 회장은 “지난 20년간 해온 것처럼 계속 노력하면 세계적인 대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벤처기업협회장이지만 기업을 키워 중견기업연합회장, 전경련 회장까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다산네트웍스는 작년 말 창립 20년 만에 처음으로 사옥(다산타워)을 지었다. 안랩 한글과컴퓨터 등 7개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경기도 분당 판교테크노밸리에 공동으로 부지를 마련, 각자 사옥을 마련했다. 다산네트웍스 바로 옆 건물엔 안랩이 있다.

안철수 원장과의 관계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학 동기이며 인터뷰를 함께하기도 했다”며 “우리 직원들에게 강연도 두 번 정도 해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산네트웍스는 지난해 경기 침체로 매출이 2010년보다 크게 줄었다. 일본쪽 수요가 급감한 결과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소프트웨어 업체인 핸디소프트와 라우터업체인 모바일컨버젼스를 인수, 재도약을 준비했다. 대우자동차에서 일한 인연으로 자동차 고무부품업체인 동명통산도 사들였다. 다산네트웍스는 올들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그는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며 “앞으로 성장가도를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 르네상스 앞당길 것”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는 벤처 창업에 뛰어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패하더라도 창업은 인생에서 매우 값진 경험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동안 ‘벤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창업 정신을 전파하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 등에서 강연할 때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 자신의 뼈저린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을 하며 얻었던 경험은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벤처를 운영하다 사업을 접은 사람들을 임직원으로 채용한 것도 이 같은 믿음에서다. 현재 다산네트웍스 임원의 20% 정도가 이런 사람들이다. 남 회장은 “일을 대하는 태도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남다르다”며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리는 주역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올해 신입사원 공채에서는 고졸을 처음 뽑았는데 대만족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아예 대졸 공채를 폐지하고, 대신 특성화고 출신을 공채로 뽑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남 회장은 “일을 시켜 보니 고졸이 대졸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며 “능력은 가방 끈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입사 후 원하는 직원들에겐 대학도 보내줄 계획이다. 그는 “공부가 정말 하고 싶어 대학에 들어가면 얼마나 열심히 배우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현재 ‘벤처 르네상스’가 이뤄지고 있으며 누구나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남민우 회장의 단골집 알리고떼…스테이크 · 파스타 등 식사와 다양한 와인

서울 청담동에 있는 알리고떼는 와인과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와인&다이닝 바’다. 심플한 인테리어가 장점인 실내도 좋지만, 정원수와 제철 꽃이 어우러진 야외 정원을 찾는 단골 손님들이 많다.

식당 이름인 알리고떼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 쓰는 포도 품종 이름에서 따왔다. 향이 풍부하고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알리고떼에는 스테이크, 파스타, 피자, 해산물 요리 등 다양한 메뉴가 있다. 이 중 부드러운 육질의 티본 스테이크, 양갈비 스테이크 등이 인기 메뉴다. 올봄부터는 정원에 어울리는 바비큐를 새롭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강남구청역 사거리에서 청담역 방향으로 60m 정도 직진하고 좌회전하면 보이는 2층집이다. 티본 스테이크 7만원, 양갈비 스테이크 4만2000원, 모둠 바비큐 6만8000원. (02)514-9973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