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동물 복지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미국 호주 등의 대형 돼지농장엔 임신용 우리(gestation crate)라는 게 있다. 가로 60㎝, 세로 210㎝ 정도의 쇠창살로 만든 작은 우리다. 몸을 돌리지도 못할 만큼 좁은 이곳에서 암퇘지는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인다. 몇 달간 꼼짝달싹 못한다. 좁은 공간에서 사육돼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는 불량육질 발생률이 40%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맥도날드는 이런 임신용 우리에서 길러진 돼지고기의 구매를 줄이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동물권(animal right)’을 보호하라는 동물보호단체들의 압력에 손을 든 것이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이 동물도 보호받을 동물권이 있다는 것은 1780년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처음 주장했다. 1822년 영국에서 동물복지법이 만들어진 뒤 프랑스 캐나다 미국 등이 동물권보호를 잇따라 제도화했다. 스웨덴에서는 애완견을 5시간 방치하면 고발당하고 유기견을 입양할 때 월 수입까지 심사받도록 할 만큼 관련법이 강화되는 추세다. 독일은 2002년 헌법에까지 동물권을 집어넣었다.동물보호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이처럼 계속 강화되고 있다. ‘축산 공장화’로 고기가 대량 생산되고 돌고래쇼처럼 오락용으로 동물 이용이 증가하는 데 따른 반작용이다. 실제로 치킨집에 대량 공급되는 암탉 중엔 다리나 날개가 쉽게 부러지는 게 많다고 한다. 암탉은 자연상태에선 연간 30개 정도의 알을 낳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사육장의 암탉은 좁은 틀안에서 연간 300개 이상의 계란을 생산한다. 이때 칼슘이 다 빠져 나가 골다공증에 걸려 작은 충격에도 쉽게 골절되는 탓이다. 미식가들이 즐겨찾는 거위간은 틀안에 갇혀 목만 내놓은 거위의 위에 튜브로 음식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대량 생산된다. 거위를 못 움직이게 하고 영양분만 주면 간이 비대해지고 그만큼 공급하는 양은 많아진다. 미국 환경운동가 게일 아이스니츠는 저서 《도살장》에서 소들이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절단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동물권보호 확대는 대세다. EU는 올초부터 닭을 한 군데서 모아 키우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 중이다. 세계동물보호협회는 방목 유기농 축산품만을 사고 팔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한국에서도 동물학대를 이유로 서울대공원의 돌고래쇼와 청계천의 관광용마차가 올해부터 사라졌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생육면적 등 사육환경을 검증한 ‘동물복지 축산농장’ 12곳을 처음으로 인증했다. 아직 어느 수준까지 동물권을 보호해야 하는지 사회적 공감대는 없다. 그러나 기왕 동물복지확대라는 국제흐름을 따르기로 한 이상 보신탕 때문에 만들어진 동물학대국이란 이미지는 지워졌으면 좋겠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