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미안함'의 지성사적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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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옛날 이 땅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 옛날을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성급하다. 가야도 엄연히 옛날 이 땅에 있던 나라가 아닌가. 지금 동아시아에는 한국 중국 일본이 있지만 그 옛날까지 동아시아 삼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곤란하다. 류큐(琉球)도 엄연히 동아시아에 있던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이 류큐에 대해 조선이 잘못한 일이 있다며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선 후기 문인 김려의 《유구 왕세자 외전》을 보자.
"17세기 제주목사 해적행위…정말 미안하오, 유구!"…부끄러운 과거사 치유 방법
노관범 <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 >
‘인조 때에 왜인(倭人)이 유구를 침략해서 그 왕을 잡아갔다. 왕세자가 보물을 갖고 왜에 들어가 부왕(父王)을 풀어 달라고 하려 하는데 배가 표류하다 제주 바닷가 구석에 정박했다. 제주 목사 이란이 사람을 보내 배 안을 정탐하게 하니 산을 덮을 만한 휘장 2부, 술이 샘솟는 돌 1좌, 흰 앵무새 1쌍, 수정 알 2매 등의 보물이 있었다.’제주목사 이란은 사자(使者)를 보내 보물을 달라고 했다.
‘“나에게 술이 샘솟는 돌을 달라. 너희들을 왜에 들어가도록 보내 주겠다”고 했다. 세자는 “내가 보물을 아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부왕께서 힘 없이 붙잡혀 갇혀 계셔서 보물이 없으면 부왕을 풀어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치욕은 이웃 나라의 치욕과 같으니, 원컨대 대부는 이를 슬퍼하소서”라고 했다. 사자가 세 번 갔으나 세자는 눈물을 흘리며 허락하지 않았다. (…) 이란은 배 안의 물건을 모두 약탈하고 마침내 세자를 죽였다.’
김려는 이 일을 한탄한다. ‘슬프고 슬프구나. 유구 세자의 일이 슬프고 슬프구나. (…) 지금 임금 을묘년(1795, 정조19) 겨울 유구 사람이 제주에 왔다. (…) ’1609년 동아시아에는 바닷길이 세 개 열렸다. 하나는 조선과 일본의 바닷길이다. 그해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고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통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다른 하나는 네덜란드와 일본의 바닷길이다. 일곱 해 전 동인도 종합상사를 설립한 네덜란드는 히라도에 무역관을 설치했다. 나머지 하나는 류큐와 일본의 바닷길이다. 일본 사쓰마의 시마즈 이에히사는 류큐의 수도인 수리를 함락하고 중산왕 상령을 포로로 붙잡았다.
제주도 해역이 소란스러워진 것은 이 무렵이었다. 네덜란드 우베르케르크 호의 선원 웰트후레이(박연)가 1627년 제주도에 표착했고, 드 스페르버르호의 선원 하멜이 1653년 역시 제주도에 표착했다. 하멜은 운이 좋아 13년 만에 극적으로 일본으로 탈출했지만 대개는 평생 조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1613년 류큐 상선이 제주도에서 만난 것은 조선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재앙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주 목사의 해적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류큐는 조선이 중국 베이징에서 국서를 교환하는 교린국가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명의 만력제가 류큐와 섬라(暹羅·태국)의 수군 20만명을 동원해 일본 본토를 공격할 것이라는 작전 계획이 선조에게 알려질 정도로 든든해 보이는 우방이었다. 김려의 글에서 주목할 부분은 후반부다. ‘미안하오, 유구! 정말 미안하오.’ 그는 거의 이런 마음으로 이 일을 슬퍼했다. 중요한 것은 이 ‘미안함’이다. 그리고 미안함의 역사적 구조다.
당시 류큐와 네덜란드만 재앙을 만난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제주에 중국 사람들이 표류하면 조선은 해외 반청운동을 의심하는 청의 강압 때문에 돌아가면 그들이 죽을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청에 보내야 했다. 하지만 춘추대의(春秋大義)가 있었기에 의식을 배반한 존재의 부끄러움을 잊지는 않았다. 조선에서 17세기와 18세기의 차이, 그것은 부끄러운 현재를 미안해할 겨를조차 없었던 생존의 시대와 부끄러운 과거를 미안해하고 윤리적으로 치유해 나가는 문화의 시대, 그런 차이가 아니었을까.
지금 동아시아에 필요한 것은 이런 ‘미안함’의 지성사적 전통들을 서로 공유하고 그 위에서 진정한 선린에 이르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관범 <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