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금융업, 덩치보다 체력으로 승부 걸어야"

한경과의 맛있는 만남

23년간 공직…무식하게 일했죠
외환위기 소방수로 투입됐지만 방화범으로 몰려 옷 벗어

경기고 재학 시절 수재로 통해…문과 진영욱·이과 진대제
'진' 씨가 주름잡는다는 말 돌아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61)이 항상 마음에 담고 사는 문구다. 매사 합리적 사고능력이 필요한 동시에 포용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겸해야 한다는 의미다. 23년간의 공직생활과 13년 동안의 민간 및 정책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를 맡으면서 터득한 금과옥조다. 정책금융공사 슬로건도 ‘따뜻한 정책, 든든한 금융’으로 정한 이유다. 지난 4일 서울 이촌동에 있는 일식집 ‘우미스시’에서 만난 진 사장은 “이 집 음식 중 간장게장이 일품”이라며 게 다리 하나를 덥석 집어 권했다. 모둠회와 소라구이, 간장게장 등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한상에 차려져 나왔다. 음식 맛과 분위기 모두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진 사장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공무원 시절 이 동네에 살면서 한 달에 두세 번씩 이곳을 찾곤 했다. 20년 넘는 인연이다. 1998년 공직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지낼 때는 더 자주 왔다고 한다. 진 사장은 “공무원 그만두고 1년 정도 놀 때는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생선구이 하나 시켜놓고 소주 한잔 걸치던 날이 꽤 많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겸 영화평론가

몇 순배 술잔이 돌자 산낙지가 나왔다. 어릴 적 공부 얘기가 시작됐다. 경기고 재학 시절 ‘문과는 진영욱, 이과는 진대제(전 정보통신부 장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진 사장은 수재로 통했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도 동기동창이다. 당시 경기고에 ‘진’씨들이 주름잡는다는 말이 돌았다. 진 사장은 1970년 서울대(경제학과)에 들어갈 때만 해도 공무원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기울고 진 사장의 인생도 바뀌게 됐다.

“아버지가 우리나라 고등고시 1회 합격자입니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셨죠. 하지만 아버지가 병석에 누우면서 제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서 아버지 병간호를 하며 6개월 정도 행정고시 공부를 했죠.”

“6개월 공부하고 고시에 붙을 정도면 천재 아니냐”고 묻자, 진 사장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천재는 아니고, 너무 절박하니까 되더라고요.” 진 사장은 ‘비밀’을 하나 털어놨다. 사실 첫 직장이 재무부가 아니라 산업은행이었다는 것. 1974년 입행이다. 교육받는 첫날 돈 세는 법부터 배웠다. 500원짜리 100장을 세는 방법을 배운 후 그 돈을 입행 기념 축하금으로 받았다고 했다.

“당시 월급이 6만원일 때였는데, 큰돈을 보너스로 받으니까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입행 두 달 후 고시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행시 통과하면 3급 을류로 월급이 산은의 절반 수준인 3만원이었지만 공무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 후 금융기관 월급 현실화 정책이 나오면서 은행원들 봉급이 왕창 깎였어요. 솔직히 배가 조금 아팠는데 잘됐다 싶었죠. (웃음)”

비밀은 또 있다. 진 사장은 공무원이면서 동시에 영화평론가였다. 잠을 쪼개 잘 정도로 바쁜 재무부 시절에도 워낙 영화를 좋아해 관련 매체에 종종 평론까지 기고했다. 대신 필명을 사용했다. 공무원이 영화평론을 쓴다고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필명은 오산(烏山). 어렸을 때 살던 동네 이름이다.◆방화범이 된 소방수

진 사장의 몸엔 아직 공무원의 피가 흐른다. 23년간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던 열정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될 때여서 정말 무식하게 일했습니다. 밤늦게 형광등 켜놓고 땀 냄새 진동할 정도로 했죠. 그래도 서로 불평 한마디 없었습니다. 애국심을 갖고 일했으니까.”

진 사장은 잘나가는 공무원이었다. 재무부 국제금융국을 거쳐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재무부 국제금융과장, 은행과장, 금융정책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소신도 뚜렷했다.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가 취임식에서 일갈한 ‘소신껏 일해라.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갑자기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쫓겨난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진 사장은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경기고와 서울대 출신인 이른바 ‘KS’인 데다 능력도 검증받았던 진 사장이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뼈아픈 경험을 맛봤다. 1998년 IMF 구제금융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갑자기 물러나게 된 것. 나라가 망했으니 담당 공무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원성을 이기지 못하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국란에 맞서 불을 끄기 위해 소방수로 투입됐지만 결국 방화범으로 몰려 옷을 벗게 된 셈이다.

“솔직히 억울했습니다. 잠이 안 왔어요. 15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그때를 잊을 수 없어요.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에 대한 고민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만 따지는 분위기였습니다.”

대우그룹 해체 얘기도 나왔다. 패망기업 대우를 두고 진 사장은 ‘대단한 기업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대에 기업을 창업해 그 정도로 키운 김우중 전 회장이 대단한 인물임엔 틀림없습니다. 대우의 도전정신과 열정은 아직도 배울 만하죠. 하지만 대우맨들이 억울해하면 안 됩니다. 빚이 너무 많았어요. 열심히 기업을 키웠지만 관리가 잘 안된 셈이죠. 저랑 친한 장병주 사장(전 (주)대우 사장·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런데 역설적으로 요즘은 우리 기업들의 도전의식과 열정이 너무 없는 게 문제 아닙니까. 참 아이러니죠.”

◆“금융, 덩치 아닌 질적 성장 중요”

공직을 그만두고 ‘업자’생활을 하던 진 사장은 어느날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경기중·고 동기이자 친구였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었다. 그룹에 와서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바로 민간기업 CEO로 자리를 옮기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을 찾아가 상의를 했다고 한다.

“예상과 달리 (이 위원장이) 오라고 할 때 가라는 거예요.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차도 큰 거 타고, 마누라에게 예쁜 옷도 사주면서 살라는 얘기였습니다.”

"KIC 사장때 리먼에 투자했으면 교도소 갔을 것"

진 사장은 한화증권 사장을 거쳐 한화손해보험 부회장을 지냈다. 정부와의 대한생명 인수 협상에서 적잖은 역할을 했고 한화에너지 빅딜 등도 거들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던가. 진 사장은 한화를 떠나 2008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직 공모에 응해 다시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됐다. KIC 사장 자리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부임 전인 2007년 이뤄진 메릴린치 투자 건으로 툭하면 국회에 끌려다니며 질책받기 일쑤였다. 왜 맡았나 하는 후회도 했다.

“그때 국회 앞에서 직원들과 먹은 술만 해도…. 그런데 메릴린치 투자건이 잠잠해질 무렵, 모 인사가 나를 찾아와 리먼브러더스에 투자하자 하더라고요. 아무 말 없이 그냥 돌려보냈어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죠. 그리고 몇 달 후 리먼이 망했습니다. 그때 공사가 리먼에 투자했으면 전 아마 교도소에 갔을 거예요. (웃음)”

‘도둑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초 유재한 전임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문제로 갑자기 사퇴하면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진 사장을 신임 정책금융공사 사장으로 추천,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정책금융공사 사장으로 내정됐을 때 최봉식 공사 부사장이 업무보고 때문에 찾아왔더라고요. 그때 제가 고백했지요. 사실 나도 산은 출신이라고. 절대 낙하산이 아니라고…. (웃음)”

진 사장은 정책금융공사의 현안으로 산은금융지주 기업공개(IPO)를 꼽았다. 먼저 산은금융 IPO를 위해선 국회 보증 동의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시국회 동안 보증 동의 처리가 되지 않으면 사실상 연내 IPO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마지막으로 국내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어봤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금융업도 체력을 갖춰야 합니다. 덩치가 아니라 질적으로 좋아져야 한다는 얘기죠. 사이즈가 크다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금융이나 KB금융 같은 곳의 자산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0% 정도 됩니다. 외국에선 이런 경우가 거의 없죠. 우리 경제 규모가 작은 것이지 은행 크기가 작은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금융업이 질적으로 발전하려면 자산운용업을 더 키우고 인력도 더 확보해야 합니다.”

식당 주인장 눈치를 봐야 하는 밤 11시가 돼서야 술잔에 가던 잦은 손길이 뜸해졌다. 마지막 잔을 비우고 일어설 무렵 주인장이 보자기로 싼 작은 통 하나를 내왔다. 알탕이었다. 진 사장의 부인이 워낙 알탕을 좋아해 준비했단다. 20년 단골집이 틀림없었다.


진영욱 사장의 단골집 우미스시
이촌동서 20년간 영업…생선회·간장게장 전문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에 있는 우미스시는 정통 일식집이다. 이촌동에서만 20년 이상 영업을 했다. 생선회, 간장게장 전문집으로 유명하다. 입소문을 타면서 8년 전 현 위치로 확장이전했다.

꽃게는 연평도에서 잡은 것으로, 4~5월과 10~11월께 알이 가득 찬 것들만 골라 쓴다. 생선과 새우, 전복, 장어 등도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당일 갓 올라온 재료만 고집하고 있다. 담백한 맛을 위해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 메뉴는 정식이다. 생선회정식, 새우튀김정식, 장어정식 등이 있다. 가격대는 2만5000~6만원대. 간장게장이 기본으로 나오는 게 특징이다. 이 밖에 생선초밥, 성게알초밥, 장어덮밥 등도 있다. 요즘엔 제철음식으로 민어회, 청어구이 등도 내놓는다. 점심은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저녁은 오후 5시30분부터 10시까지 영업한다. (02)794-0111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