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기업회생제도] 경기침체로 '워크아웃 효과' 실종…기업·채권단 '승자없는 게임'

건설업계 "억울하다"

"워크아웃은 건설사 고사작전…초기에만 자금 '반짝 지원'…자산매각 과정 껍데기만 남아"
“지난 4년간 채권단에서 5000억원을 회수해 갔습니다. 600억원의 추가 유동성을 지원해 달라고 했지만 채권단 회의에서 무산돼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우림건설 전 임원)

삼환기업이 지난 16일 법정관리로 전격 선회한 것은 금융권이 채권 회수에 집중하는 워크아웃보다는 법정관리가 회사의 회생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관리인 유지제도를 통해 기존 대주주가 경영을 이어갈 수 있고 법원의 채무 재조정으로 워크아웃보다 더 많은 부채를 탕감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워크아웃은 법정관리 지름길?”

건설업계에서는 그동안 ‘워크아웃 효과’ 논란이 지속돼 왔다. 워크아웃은 채권금융기관이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부실 징후기업으로 판단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적 구조조정 작업이다.

주채권은행에서 파견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수입과 지출 등 모든 재무 상황을 챙긴다. CFO의 결재 없이는 ‘1원도 못 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기에는 일부 유동성 자금이 지원되지만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을 거치는 과정에서 껍데기만 남은 부실 업체로 전락하게 된다는 게 건설업계의 주장이다. 실제 월드건설 우림건설 풍림산업 벽산건설 등 워크아웃 건설사는 결국 채권단의 자금 지원 중단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워크아웃 건설사는 철저하게 채권 회수 계획안에 따라 움직인다. 우림건설 전직 임원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직원들을 줄여 연간 880억원에 달했던 고정비를 200억원으로 줄이는 등 회생을 위해 채권단에 협조했지만 금융권은 끝내 자금지원을 거절했다”며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자산과 직원이 모두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들 워크아웃 건설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분양시장 침체에 따른 미분양으로 고전하고 신용등급이 낮아 신규 일감 확보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한 중견 건설사 사장은 “건설업계에서 워크아웃은 사실상 ‘금융사 회생작전’이라고 부른다”며 “초반 생색내기용으로 유동성 자금을 지원한 뒤 더 이상 지원이 없어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는 생존을 위한 선택최근 건설사들은 워크아웃 대신 법정관리를 선호하는 추세다. 지난해 이후 LIG건설 동양건설산업 범양건영 임광토건 등이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채권단과의 협의를 뒤로 하고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선택하는 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C등급인 워크아웃은 그나마 공공발주공사나 아파트 도급사업을 공동 참여 형태로 수주할 수 있지만 신용등급 자체가 부여되지 않는 법정관리 기업은 사업 자체가 어렵다. 그럼에도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건 도산을 막고 법원의 도움으로 마지막 회생의 끈을 잡아보겠다는 전략에서다.

현재 법정관리 중인 건설사는 이전 대주주가 경영을 하더라도 전문경영인(CEO)에 지나지 않는다. 회생계획에 따라 기존 주주의 감자 및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거치면 채권단이 사실상 대주주로 경영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한 법정관리 건설사 임원은 “대주주는 하청업체와 금융기관에 피해를 끼쳤다는 죄의식을 갖고 있다”며 “지분을 잃더라도 기업을 회생시켜 기업가로서 명예를 회복하려는 오너들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김보형/김진수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