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일자리 걷어차는 세력들

정치권은 시장억압, 노조는 하투
세계경제 침체속 위기의식 없어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국제통화기금(IMF)은 17일 발간한 ‘세계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세계적 경기회복 둔화로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 중 하나로 우리나라를 지목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확대와 대외수요 약화에 따른 역풍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출전망만 어두운 것이 아니다. 가계부채는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부문의 소득과 고용상황이 조금만 나빠지면 가계부채는 ‘폭탄’으로 터지게 돼 있다.

우리경제는 안팎으로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폭풍전야의 고요인 셈이다. 대선을 앞둔 탓에 이성은 실종된 상태다. 오히려 위기의식이 공유되지 않는 것이 위험하다. 대선 주자들은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지만 다분히 선거용이다. 여권은 ‘고용률 중심의 국정운영 체제’를 구축하고, 야권은 ‘대통령 직속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겠단다. 하지만 고용률 중심의 국정운영은 ‘작위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국가위원회가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 사전적 의도와 달리 정치권은 일자리를 걷어차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로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여야의 정책 사고는 “마차로 말을 끌게 하겠다”는 논리 도치의 전형이다. 한 유력인사는 “경제 권력이 정치·국가권력을 압도하고 국가가 재벌의 이익에 봉사해 왔기 때문에,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국가를 약자, 재벌을 강자로 비약시키고 있다. 대기업의 불법 행위가 있다면 엄정하게 처벌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국가권력이 경제권력에 봉사해 왔다”는 것은 정치인이 뇌물을 받았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유력인사는 “암탉의 목을 왜 비틀겠느냐, 그냥 우리에 넣어 기르면 된다”고 했다. 대기업이 ‘닭 모가지’로 폄훼된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올 들어 상장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고 한다.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은 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아마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3.5%를 낮춰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자급감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경제는 심리이고 흐름이다.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이를 웅변한다. 부자가 지갑을 열고 대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경제가 선(善)순환된다. 소비가 소비를 낳고 투자가 투자를 낳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슬 퍼런 정제되지 못한 경제민주화 담론은 일자리 창출에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

일자리를 걷어차기는 노조도 마찬가지다. 현대차 노조는 사측과의 교섭과는 별개로 오는 20일 금속노조 2차 파업에 참여한다. 하투(夏鬪)에 합류하겠다는 것이다. “고용제도를 바꾸는 사회적 파업”을 벌이겠다는 것이 명분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1인당 생산성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쟁사의 악재에 기인한 ‘반사이익’에 취해 고용제도 등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는 것은 단위노조 본연의 자세를 이탈한 것이다. 최근 일부 생명보험회사 인수·합병(M&A) 거래도 노조의 강력 반대로 무산되거나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고용보장’ 요구가 그 핵심이다. 노조로서는 당연한 요구로 생각할 수 있지만, 거래가 지체되면 매물의 경제적 가치가 상실돼 거래가 무산될 수 있다. 이는 ‘노조원’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다. 고용승계 기회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일자리를 걷어차는 것이다. 고용안정은 M&A 이후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통해 꾀하는 것이 순리적이고 합법적이다. 노조에 ‘경영참여’는 달콤한 유혹일 수 있지만, 경영참여로 고용안정을 꾀할 수는 없다. 독일의 70년대 경험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기저에 깔린 ‘반시장적 오만과 독선’은 경제심리를 얼어붙게 하고 경제흐름을 막는다. 근로조건 개선의 범위를 넘는 노조활동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뿐이다. 국가와 조직의 권력이 커질수록 개인은 왜소해진다. 정치세력과 노조집행부는 국민과 노조원의 선한 ‘대리인’을 자처하지만 그들 역시 사적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대리인을 감시해야 한다. 일자리는 권력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장과 기업을 억압하는 것만큼 일자리를 걷어차는 것은 없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