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파멸의 고담시…인간 광기를 보다

배트맨 시리즈 완결판
인간 본성 예리하게 통찰
개봉 첫날 44만명 동원
“죽음을 두려워 않는군. 그게 자넬 강하게 만들진 않아. 약하게 만들지.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이고 누구보다도 오래 싸우는 게 무엇 때문에 가능하다 생각하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지. 죽음에 대한 공포가 힘을 줄 거야.”

감옥에 갇힌 배트맨(웨인·크리스천 베일)은 감방 동료에게 이런 충고를 듣는다. 악당 베인(톰 하디)과의 싸움에서 져 수감됐고, 탈출하기 위해 높은 담장을 기어오르다가 떨어져 실패한 뒤다. 생명줄인 밧줄 덕에 목숨은 건졌지만 무엇엔가 의지할 데가 있다는 생각이 배트맨의 탈출 의지를 약화시켰는지 모른다. 배트맨은 충고를 받아들여 밧줄을 내던지고 맨몸으로 담장을 기어오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인간 심리의 심연을 뛰어나게 묘사한 걸작이다.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에 이은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3부작 완결편인 이 영화는 지난 19일 개봉 첫날 올해 최고인 44만명을 동원했다. 티켓 예매량만 25만장으로 예매 사상 최고였다. 전 세계 흥행도 전편 ‘다크나이트’의 10억달러 기록을 깰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시리즈 특유의 눈부신 액션과 함께 인간의 내면 심리를 파고드는 드라마를 전개한다. 인물들을 한계상황으로 밀어넣고 각각의 행동을 관찰한다.

고담시 시민들의 군중심리를 보여주는 장면이 좋은 사례다. 베인은 핵무기로 위협하며 시민들을 외부와 차단시킨다. 경찰 서장은 본연의 치안 임무를 내던지고 집안에 틀어박혀 목숨을 보전하는 데 급급한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정신병자로 등장했던 인물이 거리에서 군중재판을 열고 권력자와 재벌을 단죄한다. 군중들은 무조건 동의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혁명재판소 풍경을 연상시킨다. 극단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누구나 광기를 폭발시킬 수 있음을 고발한다. ‘악의 본령’에도 현미경을 들이댄다. 베인을 비롯한 악당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타인에게 잃었거나 스스로 피해자가 됐던 경험에서 각기 증오와 복수심을 키웠다. 그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다. 악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은연 중에 상기시키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배트맨과 조커의 격전이 벌어진 후 8년간 평온했던 고담시에 다시 악의 기운이 감도는 것으로 시작한다. 베인이 공중에서 핵 물리학자를 납치하고, 원자로를 탈취하면서 고담시는 위기를 맞는다. 웨인은 칩거를 끝내고 배트맨으로 복귀하지만 베인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패하고 만다.

배트맨은 초능력이 없는 영웅이어서 위기에 빠지지만 더 강한 의지와 지혜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베인은 조커와는 다른 류의 악당이다. 명석한 두뇌뿐 아니라 완력도 대단하다. 웨인의 조력자인 두 여성은 양면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미녀 도둑 카일(앤 해서웨이)과 정의를 주장하는 여성 경영자(마리옹 코티야르)는 마지막 순간에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액션도 눈부시다. 베인이 핵 물리학자를 공중 납치하는 장면은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하다. 추락하는 비행기에 매달린 인물들의 공포와 절망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