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기준금리 하락 때 가산금리 올려 20조 더 챙겼다
입력
수정
감사원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보니감사원이 23일 내놓은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감사 결과에는 일부 은행이 학력에 따라 대출 및 금리를 차별한 것은 물론 은행 본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가산금리를 매기는 등 금융회사가 그동안 저질러온 부도덕한 행태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자수익 줄어들라…" 본점서 조직적 관리
금감원, 학력차별 금리모델 알면서도 승인
은행들은 기준금리가 내리는데도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가산금리를 신설하거나 올리는 수법으로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약 3년간 20조원이 넘는 이익을 취한 것으로 감사원은 추산했다. 이번 감사 결과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검사 및 감독한 자료를 감사원이 분석한 것인 만큼 금융당국 역시 ‘그동안 무엇을 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가계대출에서 4조원 더 챙겨
감사원은 기준금리가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은행 본점이 조직적으로 가산금리를 올려 금리 부담을 고객에게 전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은행은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5.25%(2008년 8월)에서 3.25%(2011년 6월)까지 인하하는 등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기준금리 인하로 금융시장의 대표적 지표금리인 CD 91일물 금리가 하락하는 등 이자 부담을 완화할 여건이 조성됐지만, 은행들은 이자수익 감소를 염려해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았다.
실제로 4개 은행 본점은 기존 예금금리가 높아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금리가 하락하면 이자수익이 감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규 연장 대출 시 가산금리를 신설하거나 인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연장 및 재약정 고객 등을 대상으로 가산금리 항목(유동성 프리미엄, 소액대출 가산금리 등)을 신설하고, 기존 가산금리 항목(목표이익률 인상, 우대금리 축소 등)을 인상해 대출금리를 올린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2003년 1월~2008년 9월)과 이후(2008년 10월~2011년 12월) 가산금리를 비교해 보면 가계 부문은 1.73%에서 2.57%, 기업 부문은 1.78%에서 2.71% 수준으로 각각 0.84%포인트, 0.93%포인트 올랐다. 이로 인해 기업은 16조6000억원, 가계는 3조8000억원 등 총 20조4000억원의 이자를 추가 부담한 것으로 추산됐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마다 대부분의 정기예금 금리가 고정돼 있기 때문에 기준금리가 하락할 당시 대출금리가 급격히 떨어지면 적자가 날 것을 우려해 가산금리를 평소보다 더 붙인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은행들이 20조원을 더 챙겼다는 감사원의 설명은 다소 무리한 셈법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고졸자 13점·석박사는 54점
금융감독 당국의 미흡한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내용을 보면 신한은행은 개인신용대출 금리를 매길 때 대출자의 학력 수준에 비례해 차등을 뒀다. 대출 승인 여부와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신용평점을 매길 때 고졸 이하 대출자에게 13점을 준 데 반해 석·박사 학위자에게는 54점을 줬다. 이 같은 문제점을 지도·감독할 책임이 있는 금감원은 오히려 신한은행의 이 같은 신용평가 모델을 2008년 4월 승인해줘 사실상 학력 차별을 방조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측은 “거래가 전혀 없던 고객이 대출 신청을 했을 때 처음 6개월 동안만 적용했고 그 이후엔 차별을 두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신용평가 모델을 고쳐 지난 5월 금감원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의심주문 거부 제도 '유명무실'
감사원은 증권사들이 주가조작으로 의심되는 주문을 받지 않도록 한 ‘수탁거부제도’를 무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감사 결과 52개 금융투자업자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찾아낸 총 15만6660건의 가장·통정성 매매주문 가운데 1164건(0.7%)만이 수탁거부됐다. 이 중 검찰에 고발 및 통보로 넘겨진 1만2363건에서도 222건(1.8%)만이 수탁거부되고 나머지는 단순 경고에 그치거나 아무런 예방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류시훈/임도원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