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한국家電 얕봤던 日 CEO의 후회

가전부품사 에스씨디 6년전 팔고 떠났다가
삼성·LG와 거래위해 7배 가격에 다시 인수
▶마켓인사이트 7월24일 오전 10시18분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일본전산(NIDEC) 회장(68·사진)은 ‘기업 부활의 신(神)’으로 불린다. 예리한 판단력으로 부실 회사를 인수한 뒤 모두 1년 안에 흑자로 돌려놨기 때문이다. 그런 나가모리 회장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성장 잠재력을 과소 평가했다가 부랴부랴 이를 수정하고 나섰다.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끄는 사모펀드(PEF)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는 코스닥 상장사 에스씨디 지분 42.98%를 매각하기 위한 계약을 일본전산 자회사인 일본전산산쿄(NIDEC SANKYO)와 맺었다고 24일 공시했다. 매각 가격은 405억원(주당 1950원)이다. 산쿄는 62억원 상당의 에스씨디 자사주(8.43%)도 인수해 총 51%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예정이다.

에스씨디는 일본전산이 1987년 한국에 설립한 회사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에 백색가전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나가모리 회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2006년 에스씨디를 판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예상과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가전회사들은 추락한 반면 삼성, LG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자 국내 부품시장에 다시 진입하기 위해 에스씨디를 되사기로 했다. 인수가격은 2006년 경영권을 팔면서 챙겼던 66억원의 7배 수준이다. 나가모리 회장은 1973년 교토 시골 창고에서 직원 3명과 함께 모터 제조업체 일본전산을 설립해 39년 만에 계열사 140개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인물이다. 일본전산은 세계 1위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모터 제작업체로 전 세계에서 소형 모터를 가장 잘 만드는 기업이다.

나가모리 회장은 1984년 미국 기계업체 토린을 인수한 이후 작년 말까지 29개 회사를 인수·합병(M&A)해 그룹을 키웠다. 그는 인수한 회사 모두를 1년 안에 흑자로 돌려놔 ‘기업 부활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밥 빨리 먹기’ ‘화장실 청소’ ‘큰소리로 말하기’ ‘오래 달리기’ 같은 시험을 봐 직원을 뽑는 ‘괴짜’ 경영인으로도 유명하다. 일류대학 출신이 아니라 열정 넘치는 삼류대학 출신이 일을 잘 한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나가모리 회장의 성공 스토리를 엮은 책《일본전산 이야기》는 3년 전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금도 최고경영자(CEO)의 필독서로 꼽힌다. 에스씨디 통해 한국영업 확대

일본전산은 에스씨디를 2000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킨 뒤 2006년 돌연 경영권을 팔았다. 에스씨디는 이후 기업 사냥꾼의 손에 들어가 2010년 808억원 횡령 혐의가 발생해 상장 폐지 위기를 겪기도 했다. 스카이레이크는 그해 에스씨디를 260억원(주당 1252원)에 사들였다. 1년6개월 만에 55%의 차익을 얻게 됐다.

이번 딜은 일본전산의 적극적인 인수 제안으로 성사됐다. 일본전산이 삼성 LG에 직접 부품을 납품하기 어려워 국내 시장 영업을 확대하기 위해선 에스씨디 인수가 절실했다. 에스씨디를 매각했던 2006년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나란히 글로벌 가전 강자로 우뚝 올라섰기 때문이다. 에스씨디는 일본전산과 공통사업 분야인 백색가전 모터구동장치 사업에서 우리나라 업체만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 제한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카이레이크 관계자는 “모터 분야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전산은 에스씨디를 통해 국내 영업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