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작품 100여점 발견?…학계 반론에 결국 해프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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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 검증 없이 호들갑…아마존 전자책 판매 중단
지난 7월5일 AFP, AP 등 유명 통신사들은 바로크 회화 거장 카라바조(1571~1610)의 젊은 시절 데생과 유화 100여점이 새롭게 발견됐다는 이탈리아 안사통신 보도를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서구 언론들은 앞다퉈 보도했고 추정가가 7억유로(약 9800억원)라며 계산기까지 두드려댔다. 카라바조의 초기 작품이나 데생이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호들갑을 떨 만도 했다.

마우리치오 베르나르델리 쿠르즈 게리에리와 아드리아나 콘코니 페드리골리 두 소장 학자가 시모네 페테르차노 재단이 있는 밀라노의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카라바조의 작품 100여점을 발견했다는 보도에 이어 두 학자가 다음날 아마존서점을 통해 e북을 발매하면서 상황은 더욱 증폭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잇따르면서 사태는 새 국면을 맞았다. 작품을 소장한 시모네 페테르차노 재단의 큐레이터 프란체스카 로시는 “두 학자를 본 적이 없고 이들이 낮은 해상도의 이미지 복제를 이메일로 요청한 사실만 확인될 뿐”이라며 “어떻게 학계의 검증 절차를 밟지도 않은 채 이런 책을 내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카라바조 연구 권위자인 프란체스카 카펠레티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데생들은 카라바조의 것이라기보다 스승인 페테르차노의 것에 더 가깝다”며 “두 학자가 카라바조의 명성을 이용하려 한 인상이 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쿠르즈와 페드리골리는 “여러 차례 재단을 방문, 작품들을 확인했으며 이번 연구는 2년간의 치밀한 분석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항변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들의 전자책을 출시한 이탈리아 아마존서점은 문제의 책 판매를 5일 만에 중단했고 페테르차노 재단 역시 이른 시일 내에 과학적인 검증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태는 카라바조의 명성을 이용한 두 소장 학자의 개인적 야심과 작품의 진위 파악보다 추정가 계산을 앞세운 선정적 보도의 합작품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안사통신 보도에 따라 춤을 췄다.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도 검증보다 속보경쟁에 열을 올렸다.

그런 가운데 르몽드만이 즉각적인 보도를 자제하고 그로부터 3일 후(7월8일자) 2면에 전면을 할애,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과 함께 발견 작품의 진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석 기사를 내보내 큰 대조를 보였다. 권위지의 진가가 새삼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