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조정 예상, '드라기 쇼크' 우려


글로벌 증시가 '드라기 쇼크'에 빠지며 일제히 하락했다. 지난주 '특단의 조치'를 예고했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8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사실상 무대책으로 시장에 큰 실망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3일 국내 증시 역시 다소 '깊은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열린 1일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이어 ECB까지 아무런 경기부양책을 내놓지 않은데 따른 후폭풍이 거셀 것이란 분석이다. 드라기 ECB 총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국채 매입 프로그램(SMP)을 비롯한 장기 대출 프로그램(LTRO) 재가동, 기준금리 추가 인하 등 모든 경기 부양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는 경기부양책의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가 담긴 실행 계획을 결국 밝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미 이례적인 조치를 시사해 놓고도 사실상 아무런 계획을 내놓지 않았고 또 다시 시간을 끌기 위한 말뿐이었다"고 ECB를 비난했다.

유럽 주요국 증시가 먼저 동반 급락세를 보였고, 미국 뉴욕 증시도 연일 하락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채금리까지 대외 불확실성으로 치솟았다. 전 세계가 '드라기 쇼크'에 빠진 것이다.영국의 FTSE100 지수는 전장보다 0.88% 내린 5,662.30을 기록했다. 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0.5%)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결정한 덕분에 낙폭을 일부 만회한 것이다. 프랑스의 CAC40 지수는 2.26% 급락한 3,232.46, 독일의 DAX30 지수도 2.2% 크게 하락한 6,606.09로 장을 끝냈다.

SMP 재개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스페인의 IBEX 지수는 전날보다 5.16% 폭락했고, 이탈리아의 FTSE MIB 지수는 4.64% 떨어졌다.

그간 일부 전문가들은 ECB의 경기부양책 카드가 이번 회의에서 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ECB 최대 지분(약 28%)을 갖고 있는 독일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바이트만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ECB는 물가 안정이란 본연의 업무를 벗어나선 안된다'고 말해 국채 매입 프로그램 재개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 증시도 드라기 총재 발언 탓에 일제히 하락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0.71% 하락한 1만2,878.88에 장을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0.74%와 0.36% 내린 1,365.0과 2,909.77에 장을 끝냈다.

여기에 또 다른 대외 악재가 등장해 시장의 우려를 키웠다. ECB의 무대책에 스페인과 이탈리아 은행주가 급락했다. 스페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다시 연 7% 위로 뛰었다. 이어 방키아를 포함한 스페인의 일부 부실은행이 곧 유럽연합(EU)이 제공하는 구제금융 자금을 요청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과 드라기 ECB 총재의 발언 등을 종합해 볼 때 8월보다 '9월 대책' 가능성에 기대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용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꼭 이번 회의를 통해서가 아니라도 ECB의 추후 경기 부양 노력은 강화될 것" 이라며 "현재 미국 상황을 고려할 때 오히려 9월에 기대감이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8월 시장은 9월을 바라보며 버틸 가능성이 있다.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나타나더라도 최근 강하게 반등하며 높아진 중단기 추세의 반전 가능성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으로 조 연구원은 분석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정책 이벤트 이후의 경제지표"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