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가 설탕장사? 된다고 생각했나

정부가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직접 수입한 말레이시아산 설탕이 지난달 9일부터 대형마트에서 시판됐으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가격은 20%나 싸지만 업소에나 적합한 25㎏짜리 포대로 파는 탓이다. 홈플러스는 의욕적으로 80개 점포에 매대를 설치했으나 판매량이 워낙 적어 공개를 기피할 정도이고, 이마트는 마진이 낮다며 아예 취급을 안 한다. 롯데마트는 도매점(빅마켓 금천점) 한 곳에서만 파는데 하루 3~4포대 나갈 뿐이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설탕은 대개 1~3㎏짜리 소포장이다. 그러나 ‘정부 설탕’은 가정에서 몇 년을 먹어도 남을 대용량이다. 소포장으로 바꾸려면 비용이 추가돼 민간 설탕과 가격 차이가 사라진다. 진퇴양난이다. 50억원을 들여 5000t이나 의욕적으로 수입해온 설탕이 창고에서 썩을 판이다. 정부가 유통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가격만 싸면 소비자가 선택할 것이란 순진한 발상에 서슴없이 시장 플레이어로 나서기 일쑤다. 그러다 시장을 망친 사례가 설탕만이 아니다.

전혀 알뜰하지도 않은데 ‘알뜰’ 간판을 붙여 소비자들만 헷갈리게 만든 게 알뜰주유소다. 전국 15개 광역시·도 중 10곳에서 알뜰주유소 휘발유값이 일반(무폴) 주유소보다 비쌌고 ℓ당 최고 37원 비싼 지역도 있다. 또 김장철도 아닌 봄에 배춧값이 오른다고 서둘러 중국산 배추를 집중 투하한 것도 자연스런 가격조정을 막고 변동폭만 키웠다는 게 상인들의 비판이다. 대통령부터 기름값, 배춧값에 너무 예민하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자꾸 이런저런 대책을 짜낸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수요, 수많은 변수, 치열한 경쟁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유기체다. 시장을 부정하고 대증적으로 개입하려는 게 이 정부의 물가대책이 실패하는 진짜 이유다.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장사를 시켜서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