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업자 신뢰 팽개친 동양증권

증권사 직원의 명백한 주문 실수를 악의적으로 이용한 거래는 무효이며 상대방은 해당 이익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는 2010년 2월 미래에셋증권 직원의 주문 실수로 15초 만에 70억원의 부당이득을 본 동양증권에 이를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당시 미래 측 직원은 계약당 0.8원에 내야 할 달러선물 스프레드 매수 주문을 실수로 계약당 80원에 냈고 동양증권은 3초 만에 매도주문을 내 70억원을 벌었다. 미래 측은 실수라며 무효를 요구했지만 동양 측은 거래소 업무규정 등을 들어 반환을 거부, 결국 소송으로 비화됐다. 재판부는 “미래 측의 중대한 과실은 인정되지만 당시 시세의 100배에 해당하는 계약당 80원은 명백한 주문착오임을 알 수 있었다”며 “동양 측이 악의적으로 이를 이용한 만큼 계약은 무효”라고 밝혔다.

우리는 최소한의 상도의와 거래 관행마저 외면한 동양증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물론 증권거래는 각종 거래규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거래든 기본적으로는 회원사들 간의 신뢰를 기초로 이뤄진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동양 측은 타 회원사의 순간적인 실수를 고의적으로 악용해 돈을 벌려고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악의적이다. 동양 측은 ‘주문 착오를 일으켰다고 거래 자체를 무효로 할 수 없다’는 거래소 규정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거래의 또 다른 상대방이던 하나은행 등은 모두 무효화하는 데 동의했다. 누가 봐도 너무나 명백한 주문 실수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양 측이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식으로 대처한 것은 동업자 간 최소한의 신뢰조차 저버렸다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거래소는 이 일을 계기로 지난 6월 업무규정을 개정, 착오거래를 취소하는 규정까지 신설했다. 하지만 규정이 바뀐다고 유사한 행태가 근절될지는 의문이다. 증권사 스스로 직업의식과 도덕성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파생상품 주문 실수를 가장한 통정매매가 탈세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소문도 있다. 당국은 이런 의혹들에 대해서도 조사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