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회사에 재산 물려주기…수백억 '증여세 폭탄' 맞을 수도

법원, 회사통한 우회 증여 제동

"이미 낸 법인세 따져야"
납세자 주장 일부 수용
서울행정법원이 수년간 논란이 돼온 우회증여 과세 여부에 대해 일단 과세관청의 손을 들어줬다. 부모나 조부모가 회사에 재산을 증여해 자식 등 친인척이 소유한 회사 주식의 주가가 올랐다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는 판결이다.

2007년 5월 이전에는 국세청이 이런 사례에서 주주에게 증여세를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따라 1인당 많게는 수백억원대 증여세를 부담하는 사례가 생겨날 확률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대를 잇는 가업승계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이중과세” vs “과세 당연”

형태나 목적 여하를 불문하고 무상이나 저가로 재산을 넘겨받은 사람이 증여세를 내도록 하는 ‘완전포괄주의’는 이미 2003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도입됐다. 그러나 국세청은 결손금이 있는 적자법인이나 휴업·폐업 중인 법인에 재산을 증여한 경우에 한해 이 원칙을 적용했다. 결손금이 없는 흑자 법인 주주에게는 이 원칙이 해당되지 않는다며 상당기간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 5월 국세청이 돌연 종전의 입장을 바꾸었다. 국세청은 ‘흑자 법인에 재산이 증여된 경우 주주에게 증여세 부과 여부는 사안에 따라 판단해 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증여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최대 세율 22%인 법인세를 회사에 부담시키고 자식 등 특수관계인인 회사 주주는 고율(최대 50%)의 증여세를 피하려는 변칙·간접 증여는 막아야한다고 과세관청이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납세자들은 “회사에 증여된 재산에 대해 회사가 법인세를 냈는데도 주주에게 증여세를 부담시키는 건 이중과세고, 회사에 재산이 증여된 것이지 주주에게 직접 증여된 건 아니다”며 반발해 왔다.

◆정확한 과세방법 마련돼야

법원은 포괄증여라는 큰 줄기에서는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각론에서는 납세자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회사가 법인세를 냈는지 여부를 감안하지 않고 주주에게 과세한 해당 세무서의 처분에 대해서는 “이미 낸 법인세를 따져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 “상당 기간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았던 사안에 대해 2007년 5월 유권해석을 별다른 사정변경 없이 막연하게 바꿔 과세한 건 법적안정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또 “간접적 이익, 미실현이익에 대해선 과세표준의 공정하고 정확한 계산방법이 요구된다”며 과세관청의 세금계산 방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과세관청의 증여세 부과처분을 취소토록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법원은 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상장 등에 따른 증여이익 규정 등을 참고사례로 들었다. 서울행정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따라 주주들의 증여세 부과에 대한 기준을 국세청이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예정된 유사 소송 판결에서 좀더 세세한 법원 판단이 추가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증여세완전포괄주의유·무형의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무상 또는 현저하게 싼값에 이전하는 경우 형태나 명칭 목적에 관계없이 증여로 간주해 증여세를 물릴 수 있다는 원칙. 2003년 12월 상속세 및 증여세법(2조3항) 개정으로 도입됐다.

이고운/임원기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