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만 애절…탱고에도 恨 서려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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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리스트 장대건, 대관령음악제서 탱고강의
"1900년 남미 선술집 상상"…역사·시대배경 설명에 푹빠져
“시간을 1900년으로 돌려봅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허름한 항구에 있는 한 선술집을 떠올리고요. 누추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루의 고단함을 씻기 위해 술 한잔 기울이며 가볍게 즐기던 음악이 흘러나와요. 낭만적이지만 애수가 담겨 있고, 자유롭지만 애절함이 묻어나는 음악이 바로 ‘땅고(탱고)’예요.”
지난 3일 대관령국제음악제 마스터클래스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홀.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에서 더 유명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대건 씨(38)는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탱고의 역사와 시대 배경부터 설명했다. 그의 마스터클래스를 보기 위해 몰려온 기타 꿈나무들과 일반인들은 ‘탱고 강의’에 푹 빠져들었다.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마스터클래스’에는 12개국 140여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악기를 전공하는 10~35세의 학생들이 모여 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 연주 지도를 받고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15박16일의 음악 캠프다. 클래식 기타의 공개 마스터클래스가 열린 것은 9년 만에 처음이다.
장씨는 우리나라보다 스페인과 남미에서 더 유명하다. 13세 때 처음 기타를 잡았고, 17세 때 홀로 스페인 유학길에 올랐다. 1997년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국제 콩쿠르 기타 부문에서 3위로 입상했고, 이후 10년간 20여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리세오 왕립음악원과 에스콜라 루티에르, 알리칸테 고등음악원, 스웨스 바젤 음대를 졸업했다. 고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섭렵한 그는 세고비아의 마지막 제자인 호세 토마스를 비롯해 오스카 길리아, 마누엘 곤잘레스 등 세계적인 거장들을 사사했다. “탱고에는 우리와 같은 ‘한’이 들어 있어요. 스타카토(음을 하나하나 끊어서 연주하는 기법) 등 악보에 쓰여진 작은 기호 하나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어서 해석하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스페인 살라망카에 살고 있는 그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알바로 피에리로부터 ‘가장 스페인적인 한국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9년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 서거 10주년 기념음악회에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협연자로 나섰다. 그는 마드리드 국립음악당에서 열린 이 음악회에서 로드리고의 대표작품 ‘아랑훼즈 협주곡’을 연주해 큰 박수를 받았다. 로드리고의 딸 세실리아는 축사에서 “장대건 같은 기타리스트가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공연”이라고 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의 꿈의 무대로 여겨지는 일본 이바라키현 야사토마치의 ‘기타의 전당’에도 섰다. 외국인 연주자는 1년에 네 명 이상 초청하지 않는 이 무대에서 2008년 초청 연주했던 그는 이듬해 기타의 전당을 포함, 일본 5개 도시 순회공연을 펼쳤다. 이날 장씨는 아스토르 피아졸라 ‘탱고의 역사’ 중 ‘카페 1930’과 ‘나이트클럽 1960’을 중심으로 지도했다. 월튼의 ‘다섯 개의 바가텔’로 중학생인 추형원을, 파야의 ‘일곱 개의 스페인 민요 모음곡’ 중 1·3·7번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성건(기타), 황택선(비올라)을 지도했다. 일본 도호음악원의 나가야마 에리코(16·비올라)는 “기타리스트에게 비올라 지도를 받기는 처음인데 놀랍도록 섬세했다”며 “탱고 음악의 배경과 역사를 공부한 부분이 감정 표현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