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올드보이' 3인, 금보다 값진 은메달

해고·희귀병·부상…이겨냈다
우리의 마지막 올림픽이니까
‘30대 올드보이 삼총사’가 한국 남자탁구에 값진 은메달을 안겼다.

유승민(30·세계랭킹 17위), 주세혁(32·10위), 오상은(35·11위)으로 짜여진 한국 남자대표팀은 9일(한국시간) 런던의 엑셀노스아레나에서 열린 탁구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에 0-3으로 패했다. 마롱(2위), 장지커(1위), 왕하오(4위)로 이뤄진 중국팀의 강력한 공격 앞에 마지막까지 버텼으나 끝내 실력 차를 극복하지 못했다.◆해고, 희귀병, 치열한 경쟁

2006년 독일 브레멘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6년 만에 남자 단체전 2위에 올랐지만 이들에게 지난 8개월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맏형 오상은은 지난해 12월 전 소속팀 인삼공사에서 해고됐다. 다행히 새 소속팀(KDB 대우증권)을 찾았지만 훈련에 집중하긴 쉽지 않았다. 에이스 주세혁은 올 3월 류머티스성 베체트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통증 때문에 무리할 수도 없어 한동안 운동을 쉬어야 했다. 세계랭킹이 높지 않았던 유승민은 후배 김민석(20)과 막판까지 치열한 올림픽 출전 경쟁을 치러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고질적인 어깨 통증이 재발해 몸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통증 참아가며 2번 시드 받아후배들을 누르고 올라온 노장들은 이 같은 역경을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각오로 이겨냈다. 오상은-유승민은 복식 특훈을 따로 받으며 힘든 훈련을 소화했다. 통증에 시달리던 주세혁은 몇 달치 훈련을 한 달 만에 해내야 했다.

세계 최강 중국을 결승 이전에 만나지 않기 위해선 2번 시드를 받아야 했다. 유남규 감독은 “일본 오픈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반삭발을 했다. 짧게 머리를 깎고 공항에 가서 선수들을 보는데 표정들이 확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일본오픈과 브라질오픈에서 독기를 품고 경기했다. 오상은은 일본오픈에서 준우승, 브라질오픈에서 우승했다. 주세혁도 브라질오픈에서 준우승했다.

이들은 국가 랭킹 2위를 달리던 독일을 제치고 극적으로 2번 시드를 받아냈다. 단체전에서 16강 북한, 8강 포르투갈, 4강 홍콩을 차례로 누르며 연승을 이어갔다.비록 ‘만리장성’의 견고한 벽을 넘지 못했지만 부상 등의 역경을 딛고 투혼을 불사른 결과여서 더욱 의미 있는 메달이었다.

◆차세대 에이스 육성해야

탁구계는 앞으로 차세대 주자 양성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남자부 오상은, 주세혁, 유승민과 여자부 김경아의 뒤를 이을 뚜렷한 에이스를 키워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중국을 상대할 수 있다.남자 선수로는 김민석, 이상수(22), 서현덕(21), 정영식(20·대우증권), 여자선수 중에서는 양하은(18)과 귀화선수 전지희(20) 등이 기대주로 꼽힌다. 이상수는 올해 코리아오픈에서 마롱을 꺾었고 정영식은 일본오픈에서 티모 볼, 서현덕은 지난해 중국오픈에서 장지커를 이기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김택수 KDB대우증권 감독은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려면 투자가 필수다. 특히 중국 탁구를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