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세다카·캐럴 킹…노래로 주고받은 사랑의 고백과 거절

[스토리&스토리] 예술가의 사랑 (11)

사춘기 때 만난 두 사람 대학진학 후 멀어지자…닐, 노래 '오 캐럴' 발표로 구애
빌보드 9위 기록하며 대 히트…캐럴은 '오 닐' 부르며 거절
1970년대까지만 해도 라디오 전파를 뻔질나게 타던 노래 한 곡이 있다. 바로 닐 세다카(1939년생)의 ‘오 캐럴(Oh! Carol)’이다. 물론 이 노래 말고도 ‘당신은 나의 모든 것(You Mean Everything to Me)’과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이 불멸의 올디스 벗 구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오 캐럴’은 세다카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여자 친구인 캐럴 킹(1942년생)에게 사랑을 고백한 노래다. 가사는 이렇다.

‘오! 캐럴. 난 바보처럼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당신이 날 거절할지라도…//당신은 내게 상처를 주고 나를 울린답니다./당신이 만일 내 곁을 떠난다면/난 죽어버리고 말 거예요.//그대여,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요./당신을 정말로 사랑하니까 내 곁을 떠나지 말아요./떠나지 않겠다고 말해주세요.//난 언제나 당신을 원할 거예요./당신이 어떻게 하든/오 오 오 캐럴 당신만을 사랑할 거예요.’완전히 백기를 든 사랑의 항복 선언이다. 얼마나 갈구했으면 그랬을까. 오죽하면 죽어버리겠다고까지 할까. 그런데 사랑의 고백치고는 좀 호소력이 적어 보인다. 사랑이 죽어버리겠다고 떼를 쓴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뭔가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감미로운 수사와 감동적인 액션이 아쉽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이 찌질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서 줄리아드 음대의 영재반(班)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정도였다. 그가 킹을 만난 것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레슨을 할 때 킹이 그에게 피아노를 배우러 오면서였다. 사춘기 소년 소녀로 만난 두 사람은 피아노 레슨을 매개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때의 뽀송뽀송한 러브스토리인데 안타깝게도 자세한 내막은 알려진 게 없다. 분명한 것은 둘의 관계가 킹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속됐고 킹이 대학(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에 들어가면서 세다카를 차버렸다는 사실이다. 세다카는 고교 졸업 후 작곡에 몰두하는 한편 ‘오늘 밤 사자는 잠들었네(Lion Sleeps Tonight)’로 유명한 토큰스(Tokens)를 결성, 그룹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잠깐 관계가 소원한 사이 뜻하지 않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킹은 대학 입학 후 본격적으로 작곡을 했고 이때 관심사가 비슷하던 화학과 학생 게리 고핀을 알게 된다. 킹은 자신과 음악적 성향이 비슷한 고핀에게 빠르게 빠져들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세다카는 고백송인 ‘오 캐럴’을 발표함으로써 연인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는 1958년 말 이 곡을 도넛판(싱글)으로 발매했는데 이듬해 빌보드 히트 차트 9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한 번 떠나간 연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해 가을 킹은 자신의 단호한 태도를 담은 답가 ‘오 닐(Oh! Neil)’을 발표했다.

‘오! 닐. 난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해왔어요./(그렇지만) 난 당신이 나를 노래에 등장시키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오! 닐. 우리 할아버지는 당신의 레코드를 싫어해요./그가 내게 말하길 당신 레코드를 틀면 죽을 줄 알래요./맙소사, 그가 엽총을 갖고 오고 있어요./아, 가망이 없군요. 오! 닐./난,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을 거예요./(엽총 발사음)/(할아버지) 내가 저 녀석한테 저 빌어먹을 닐 세다키(이름을 살짝 바꿨다)의 노래를 틀지 말라고 했는데.’

애절한 사랑에 대한 거절치고는 참 야멸차다. 한참 달콤한 추억을 회상하는 척하더니만 킹 자신이 할아버지 총에 맞아 죽는 걸로 끝을 맺는다. 사랑의 상대가 죽었으니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면 이젠 세다카가 장담한 대로 목숨을 끊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러나 세다카는 ‘할리우드 액션’조차 취하지 않았다. 사실 세다카로서는 그리 절박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킹의 사랑을 얻지는 못했지만 대신 고백의 노래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니 말이다. 한편에선 세다카가 애초부터 캐럴의 마음을 돌려세우려는 의지는 별로 없었다는 참새들의 입방아도 들린다. 세다카는 당시 세계 각국 히트송들의 비결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었는데 여자의 구체적인 이름이나 소녀(girl)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들이 히트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오 캐럴’은 그런 목적 아래 탄생한 일종의 실험적인 노래라는 것이다.

킹의 단호한 거절에도 나름 속사정이 있었다. 세다카의 고백송이 나올 무렵 킹은 뜻하지 않게 고핀의 아이를 임신하게 됐는데 당시 킹은 17세의 미성년이었다. 이 사실을 안 킹과 고핀의 부모들은 세간의 이목을 의식, 부랴부랴 둘의 결혼을 밀어붙였다.

고백송을 주고받은 후 둘은 모두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닐은 히트곡을 연이어 쏟아냈고 킹은 남편인 고핀과 콤비를 이뤄 ‘원 파인 데이’ 등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했다. 킹은 또 1971년 명반 ‘태피스트리’를 발표, 가수로도 대성공을 거둔다. 세다카와 킹의 풋사랑은 이제 전설이 됐지만 둘이 노래를 통해 주고받은 사랑의 메시지는 오늘도 듣는 이의 명치끝에 짜릿한 울림을 전해준다. 두 스타의 이야기는 바로 당신과 당신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