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의 함정'…외벌이로 살 수 없는 이유

다시 보는 ‘맞벌이의 함정’… ‘재정 소방 훈련’이 절실한 때
맞벌이는 가계 고정비용 감당 수단

얼마 전 2003년 출간된 ‘맞벌이의 함정’이란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요즘 돌아가는 사태와 이 책의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하버드대 파산법 교수였던 엘리자베스 워런이다. 워런 교수는 중산층 맞벌이 부부 가정들이 딱히 과소비를 하지 않았고 또 인생을 즐기기 위해 오락성 소비도 하지 않았음에도 파산에 이르는 과정을 분석했다. 당시 미국에서 이 책이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미국의 중산층이 1970년대보다 75%나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지만 재정적 안정성은 훨씬 떨어져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돈을 더 많이 벌었지만 그 돈이 집값·교육비·의료비로 더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세계 그 어느 나라 부모든 간에 자녀들을 보다 안전하고 학군이 좋은 곳에서 키우려는 마음은 마찬가지다. 미국의 부모들도 더 좋은 학교를 찾아 이동했고, 이는 자연스레 학군이 좋은 곳의 주택 수요를 늘리는 역할을 했다. 워런 교수는 이를 ‘학군 입찰 경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교육비와 주거비가 서로 동반 상승 작용을 하면서 가계의 가장 큰 고정비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로 얘기하면 초등학교 입학 전 교육인 프리 스쿨에 대한 비용도 증가했다. 과거에는 결혼 후 자녀를 낳더라도 교육비가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3~4세만 돼도 어린이집을 다니고 각종 학원에 등록한다. 출산과 동시에 교육비 지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학 교육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산업사회에서 지식 기반 사회로 진행되면서 좋은 학력은 좋을 일자리를 얻기 위한 자격증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실제 학력과 소득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여러 연구 결과는 대부분 ‘고학력=고소득’의 방정식이 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 결과 예전에 중산층 맞벌이는 여유 있는 삶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당장의 가계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만일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퇴사해 돈을 벌지 못하면 가계의 재무 안정성이 급속히 악화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산층의 재정 안정성을 다시 높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 현실이 바뀌어야 하고 주택 시장도 안정돼야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양육 환경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 정책은 아이를 더 낳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셋째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양육 환경이다. 양육 환경이 개선돼 비용이 줄어들면 출산율은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다. 출산율 제고는 좋은 양육 환경의 결과일 뿐이다. 여기에 개인적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설사 사회적 여건이 부족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개인은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 워런 교수는 이를 위해 ‘재정 소방 훈련’을 제안하고 있는데, 우리 모두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재정 소방 훈련에는 3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첫째, 당신의 가정은 한쪽 소득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맞벌이 부부는 한 명이 퇴사나 실직했을 때 외벌이 수입으로도 생활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질문이다. 둘째,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 사람들은 소비를 줄인다면서 외식비 등 사치성 비용부터 절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비용은 그리 크지 않다. 무리해 산 집의 대출금과 사교육비 등이 더 크다. 이런 고정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비상 대책은 세워 놓았는가. ‘남편이 실직한다면’, ‘건강상에 문제가 생겨난다면’ 등의 문제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보장성 보험은 대표적인 가정경제의 안전망이다. 투자의 시작과 끝은 흔히 리스크 관리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투자의 기본은 첫째도 리스크 관리, 둘째도 리스크 관리, 셋째도 리스크 관리라고 얘기한다. 가정경제도 마찬가지다. 화재가 일어나면 피해를 줄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소방 훈련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 중산층의 가정경제는 불이 붙기 일보 직전이다. 재정 소방 훈련이 절실한 때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