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형평성 논리에 멍든 자본시장

김동윤 증권부 기자 oasis93@hankyung.com
“감사원이 증권업계의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다.”

최근 감사원이 연기금이 증권사에 주는 위탁매매수수료가 자산운용사보다 많다고 문제제기한 것을 놓고 증권업계에서는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증권사들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에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다르기 때문에 수수료도 다르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요즘 증권업계에 대한 정부의 시각엔 기계적인 형평성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2012년 세법개정안에서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에 대해 거래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물 주식에 거래세를 매기고 있으니 파생상품에도 거래세를 부과해야 공평하다는 게 재정부의 기본 인식이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선 “파생상품은 매매빈도(회전율)가 주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잦다는 걸 고려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주식거래에 대해 내년부터 거래세를 부과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0년부터 공모펀드와 국민연금 등도 거래세를 내고 있으니 우정사업본부도 거래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 재정부 생각이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는 “국가가 국가기관에 세금을 징수하는 게 말이 되냐”며 반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질 것 같진 않다. 증권업계에선 우정사업본부가 거래세 때문에 내년부터 차익거래를 할 수 없게 되면 국내 차익거래 시장은 외국인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수수료와 세금 문제 등에서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생각은 물론 타당한 면이 있다. 아쉬운 건 ‘자본시장 육성’에 대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으로 일하던 시절 ‘자본시장법’ 초안을 브리핑하면서 “한국 자본시장의 빅뱅이 시작될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당시 증권가에선 “한국의 골드만삭스가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는 증권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금융정책의 수장을 맡고 있는 지금 여의도 증권가에선 아무도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얘기하지 않는다. “요즘 정부 정책을 보면 ‘형평성’과 ‘자본시장 발전’을 함께 고민하는 균형감각이 아쉽다”고 지적하는 한 외국계 증권사 대표의 말을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김동윤 증권부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