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미래 불확실성을 왜곡·무시·회피하는 '내부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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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CEO 경영교실
이상주의자
미래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데이터만 있으면 예측 장담
현실주의자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며 매순간 발빠른 대처로 충분
생각없는 사람들
불확실할땐 가만있는게 상책…혹은 뭐든 밀어붙이면 되고
기업들이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는 불안감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한걸음 내딛으려고 해도 발 아래가 땅인지 허공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힘들게 내린 의사결정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줄지 손실을 발생시킬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사전에 뭔가 예정돼 있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필요 이상으로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자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상주의자첫 번째 유형은 ‘이상주의자’다. 이 사람들을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더 많은 정보를 세밀한 수준까지 찾아내고 인과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하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서 70% 이상의 사람들이 이상주의자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상주의자들은 미래를 전망하는 보고서를 내놓으면 이런 식으로 되묻곤 한다.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확히 예측한 건가? 확실한 근거를 갖고 수치로 표현하도록 해”라고 말이다. 이는 예측을 선호하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예측한 결과가 틀리면 정보를 덜 수집했거나 덜 분석했기 때문이라며 직원들의 노력 부족을 탓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상주의자들은 예측을 통해 불확실성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하나의 숫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호하는 예측 기법들은 불확실성을 절대 깨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현재와 미래는 복잡한 상호작용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
미래의 불확실성을 바라보는 두 번째 유형은 ‘현실주의자’다. 이들은 그때그때의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행동하면 불확실한 미래를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와는 달리 미래를 결코 옳게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불확실성을 철저하게 무시해 버린다.
미래란 예측 가능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못 박는다. 그러면서 매일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변화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언뜻 보면 그들의 의견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보다 더 큰 이상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지 못한다. 즉각적으로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SUV를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가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급등해 판매가 뚝 떨어졌다고 해도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생산라인을 탄력적으로 중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익이 안 나는 제품을 더 이상 납품하지 않겠다고 고객 회사에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상황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굳이 불확실성을 논할 이유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희망사항이다.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
세 번째 유형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무조건 가만히 있거나 저돌적으로 앞서 나가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이렇게 뭐라도 하면 잘 되겠지’라는 꽉 막힌 신념과 고집에 사로잡혀 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기업 내에 제법 많이 분포해 있을 것이다.미래의 불확실성은 ‘이상주의자’의 주장처럼 정복될 수도 없고, ‘현실주의자’의 자신감처럼 무시될 수 없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의 경우처럼 대책 없이 회피할 대상도 아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미래를 보는 관점은 불확실성을 왜곡하거나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미래의 여러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각각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 시나리오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업 내에서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모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좀 심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런 사람들을 ‘미래 대비를 저해하는 내부의 적’이라고 부른다. 자기 자신이 혹시 내부의 적에 포함되지는 않는지, 또는 주변 사람들이 어떤 유형인지 판단해 보아야 기업이나 조직의 미래 발전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이주영 한경아카데미 연구원 opeia@hankyung.com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no1marketer@naver.com>
△포항공과대 산업경영공학과, 연세대 경영대학원
△기아자동차, LG-CNS, 아더앤더슨, 왓슨와이어트전략 컨설턴트
△저서 ‘문제해결사’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과학에 길을 묻다’ ‘경영유감’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