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게 터졌다" 허점 많은 입학사정관제, 비판 쏟아져


성폭행 연루자 입학 계기, 성균관대 등 대학들 대책 마련 나서

그동안 평가방식에 맹점이 많다며 비판받던 대입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성폭행 연루자가 성균관대에 입학한 사실이 밝혀지며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이달 17일 입학사정관 전형의 문제가 불거졌다. 성균관대 1학년 A 씨가 고교 시절 성폭행 연루 경력을 숨기고 지난해 입학사정관제 '리더십 전형'에 합격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성균관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A 씨의 성폭행 가담 사실이 확인되면 입학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A 씨는 자기 소개서와 교사 추천서에 봉사활동 경력을 기재해 성균관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A 씨는 지난 2010년 대전에서 일어난 지적 장애인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연루자 중 한 명이었다. A 씨는 이 같은 내용을 입학 지원 서류에 밝히지 않았다. A 씨는 사건과 관련해 최종적으로 법원의 보호처분을 받았다.

20일 대학들에 따르면 A 씨 사건으로 촉발된 입학사정관제 논란은 제도 도입 당시부터 예견됐다. 성적 순이 아닌 역량·인성 등을 평가해 선발 기준을 다양화 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수험생을 제대로 평가·검증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입학사정관제는 2007년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올해 시행 6년차에 접어들었다. 점수 위주의 대입 선발방식을 탈피해 창의력, 잠재력, 발전가능성 등을 평가해 학생들을 뽑는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부작용도 예견됐다. 특히 성적을 대신할 만한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면접 등 까다로운 절차에 비해 대학의 전담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성폭행 연루 학생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명문대에 입학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이런 우려가 현실화 됐다.

입학사정관 전형의 최대 맹점은 수험생이 사실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허위 사실을 기재할 경우 걸러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학생과의 신뢰 관계에 바탕한 제도'인 입학사정관제가 갖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김윤배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1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A 씨의 자기 소개서나 교사 추천서에서 성폭행 관련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는 A 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했다. 면접 등의 절차가 진행됐지만 작정하고 속이는 수험생을 당해낼 수 없었다.

대학들이 제대로 검증 과정을 진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시스템이다. 성적 순대로 잘라 합격 여부를 가리는 기존 제도와 달리 면접 등 평가 절차에 시간이 걸린다. 대학 입장에선 이를 전담하는 입학사정관을 채용해야 해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완벽한 평가와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서울 주요 대학의 입학사정관전형에 지원하는 학생은 각 전형마다 수천 명인 반면 이를 평가하는 각 대학 입학사정관 숫자는 많아야 20~30명 정도다.이 때문에 제도 도입 이후 줄곧 모집인원 증가세를 보이던 주요 대학들의 입학사정관전형도 지금은 대부분 정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서울의 한 유명 대학 관계자는 "이미 입학사정관들이 감당할 수 있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며 "더 이상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 인원을 늘릴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입학사정관제의 양적 확대보다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대학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느슨한 절차에 대해 자성하는 분위기다. 유기영 경북대 입학본부장은 "입학사정관이나 교수들이 진위 여부를 족집게처럼 집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수험생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과연 기재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전형 과정에서의 수험생 이력 기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대비하는 대학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앙대는 올해 입시부터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3배수를 선발하는 1단계 절차를 마친 뒤 범죄 사실이 있는 수험생들에게 소명 기회를 주기로 했다. 특히 사범대학에 입학하는 수험생에 대해서는 인성평가를 시행한다.

이찬규 중앙대 입학처장은 "학생의 범죄 기록 자체가 입학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명 절차를 마련해 죄질을 파악하는 자료로 삼을 것" 이라며 "사범대의 경우 교사에 합당한 인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에서 별도 인성평가까지 치르기로 했다" 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강문식 전국대학교 입학관련처장협의회장은 "입학사정관 전형에 최근 이슈인 인성 항목 기재를 도입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성이 부족한 수험생이 입학사정관제로 합격하는 것을 막아야 제도에 대한 믿음이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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