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중간금융지주사 황당"…보험·카드사 외국에 넘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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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계 금산분리 논란재계는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내놓은 금산분리 방안에 대해 “기업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반발했다. 중간지주회사 도입이나 금융회사의 산업자본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현재의 기업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뒤흔들고 기업들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시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은행에 이어 보험 카드 등 국내 금융회사들을 외국 자본에 넘기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소유하되 지배 말라는 게 자본주의에서 말이되나"
朴, 금산분리 강화 시사 경제실천모임과는 선그어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23일 “보유 지분의 의결권 제한을 통해 소유는 하되 지배를 못하게 한다는 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중간지주회사 도입과 의결권 제한 등은 기업 현실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나온 발상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전수봉 대한상공회의소 상무(조사1본부장)는 “현실을 모르는 학자들의 머리 속에서 나온 이상적인 내용”이라며 “중간지주회사의 실체도 모호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지배구조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전 상무는 “중간지주회사를 만들려면 기업들은 현재의 지배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기업의 지배구조는 각 나라의 상황과 기업 발전 단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어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자본의 산업자본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면 기업들은 적대적 M&A에 전면적으로 노출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때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적대적 M&A를 전면 허용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금융사가 가진 비금융 회사 지분의 의결권을 30%만 인정했으며 이후 노무현 정부 때 이를 15%로 줄인 것”이라며 “이런 예외조항까지 없애 의결권을 금지하면 국내 기업들은 손놓고 경영권을 해외 업체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대부분 상장돼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를 거느리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지분을 넘기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주식시장에도 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유럽 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은행을 제외한 제2금융회사에 대해 산업자본의 소유 한도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산업자본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GE캐피탈 등 금융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보험지주회사인 벅셔해서웨이는 일반회사와 금융사 40여곳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유럽의 알리안츠그룹, 도이체방크, 발렌베리 가문 등은 보험지주사나 금융지주사를 통해 산업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런 부작용과 우려 속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3일 ‘금산분리 강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아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후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동향을 언급하며 “우리도 금산분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핵심 측근은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주장하는 금산분리와는 전혀 무관하며 지지하는 듯한 발언 역시 절대 아니다”며 “오해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이 금융으로 인한 리스크가 경제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각종 금융 규제에 나서고 있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우리만 거꾸로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쪽으로 계속 갈 수만은 없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라며 “다분히 원론적인 차원이라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실천모임에서 추진하는 금산분리 강화 법안은 당론 채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호/도병욱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