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때 엄마 손잡고 골프 유학간 소녀 '새 역사' 쓰다

LPGA 최연소 우승 갈아치운 리디아 고의 '맹모삼천지교'

15세4개월의 세계 아마 최강
캐나디언여자오픈 정상 등극
우승상금은 2위 박인비에게

뉴질랜드 교포로 아마추어인 리디아 고(15·한국이름 고보경)가 미국 LPGA투어 역사를 새로 썼다.

리디아 고는 27일(한국시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밴쿠버GC(파72·6427야드)에서 열린 미국 LPGA투어 캐나디언여자오픈 마지막날 5언더파 67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로 올해 에비앙마스터스 챔피언 박인비(24)를 3타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다. 1997년 4월24일생(15세4개월2일)인 리디아 고는 이번 우승으로 지난해 9월 나비스타클래식에서 만 16세7개월8일의 나이로 챔피언이 된 알렉시스 톰슨(미국)의 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1년3개월가량 앞당겼다. 아마추어 선수로서는 5번째이며 1969년 조안 카너(버딘스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43년 만이다.

◆쟁쟁한 프로 선수들 제쳐

1타차 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들어간 리디아 고는 신지애(24), 세계 랭킹 2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등 이름만 들어도 버거운 경쟁자들과 동반플레이를 펼쳤다. 투어 경험이 오래된 선수조차 이런 선수들과 만나면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리디아 고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면도날 같은 아이언샷과 과감한 퍼팅으로 이들을 압도했다. 전반에 버디 2개, 보기 1개를 묶어 1타를 줄인 리디아 고는 후반 들어 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10~13번홀에서 4개홀 연속 버디를 잡아낸 리디아 고는 15번홀(파4)에서도 1타를 줄여 2위 그룹과의 격차를 4타로 벌려 누구도 그의 우승을 막지 못하게 만들었다.

리디아 고는 “이번 대회에 컷만 통과하자고 마음먹고 출전했는데 우승까지 하게 돼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반플레이를 펼친 루이스는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LPGA대회에서 마지막날의 압박감은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런데 그는 이전에 경험해본 것 같다”고 평했다.

신지애는 1타를 줄이는 데 그쳐 최나연(25), 최운정(22)과 합계 8언더파 공동 3위, 루이스는 합계 7언더파 공동 6위에 머물렀다. 아마추어 선수는 상금을 수령할 수 없어 우승상금 30만달러는 박인비가 차지했다. 박인비는 141만9000달러를 쌓아 루이스(130만1000달러)를 제치고 시즌 상금 랭킹 1위로 올라섰다.

◆차세대 ‘여제’ 후보 0순위

리디아 고는 현재 기록상으로 아니카 소렌스탐-로레나 오초아-청야니의 뒤를 이를 차세대 ‘골프 여제’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70주 넘게 아마추어 랭킹 1위를 독주하고 있는 그는 올 1월 호주프로대회인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서 만 14세9개월26일로 우승컵을 안아 이시카와 료(만 15세8개월)가 보유하고 있던 전세계 남녀프로골프 최연소 우승기록을 경신했다.

2주 전에는 아마추어 대회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제112회 US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당시 ‘프로 잡는 아마추어’ 김효주(17)도 출전했으나 16강전에서 탈락했다. 김효주는 당시 리디아 고와 연습라운드를 함께 했다고 한다. 김효주는 “리디아 고가 퍼팅을 너무 잘한다”고 칭찬했다.

세계 랭킹 1위 청야니는 “리디아 고의 우승은 투어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제 나도 투어에서 나이가 든 느낌이다. 난 겨우 23세지만 더 어린 선수들이 많다”고 말했다.

◆맹모삼천지교

제주에서 태어난 리디아 고는 2002년 5세 때 서울 대방동 집 근처 한 실내연습장에서 골프를 배웠다.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등 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골프에 대한 꿈을 키웠다. 2개월 뒤 “골프 소질이 있다”는 코치의 권유로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리디아 고의 아버지 고길홍 씨(50)는 학창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고 어머니 현봉숙 씨(49)는 영어교사였다. 부모는 골프를 가르치기 위해 2003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골프장 앞에 집을 얻었다. 9세 때부터 지역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11세 때 뉴질랜드 여자 아마추어 메이저대회에서 최연소 우승하는 등 주니어 무대를 평정했다.

키 165㎝인 리디아 고는 올해 초 230야드에 머물던 드라이버샷 거리가 늘어나 이번 대회 평균 265.25야드를 기록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파인허스트 스쿨에 재학 중인 리디아 고는 “당분간 프로로 전향할 생각 없고 대학에 가서도 골프를 계속하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미셸 위(23)처럼 미국 스탠퍼드대에 입학해서 골프와 공부를 병행할 계획이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